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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22:55


농촌에서 노동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른 노동과 달리 농사가 주는 노동은 즐거움을 수반한다. 자연을 품에 안으면서 생명을 가꾼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기쁨이다.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 중노동이고 고통뿐이었다면 벌써 농업은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일이 힘들고 맨날 손해만 보는 것 같은데도 귀농을 하고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이들의 삶이 흙과 더불어 자연과 상생하고 유기적인 접촉으로 근원적인 생명감각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이 근원적인 감각을 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 외에도 내가 농촌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들꽃



처음에는 농촌에 대해서 무지했으며, 꽃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했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잠깐 있을(?) 요량으로 농촌에 왔는데 어느 날, 내가 사는 농촌을 도무지 모른다는 것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다니기 시작했고, 틈틈이 사진기로 꽃을 담았다.

농촌 산야의 들꽃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들꽃을 통해 농촌의 매력을 살리려고 노력한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노루귀, 매발톱, 제비꽃, 돌단풍, 금낭화, 할미꽃, 노루오줌, 꿩의 다리, 은방울꽃 등. 그리고 잡풀로 여겨 누구 하나 쳐다보지도 않던 논둑의 개불알풀까지 새롭게 각인시켜서 함께 하는 구성원이 되었다. 


들꽃 축제의 시작은 마을의 가정마다 키운 꽃들이 너무 예뻐서 한군데 모아 함께 감상하자고 하면서부터였다. 여러 집을 다녀보니 가정마다 화분에 예쁜 꽃들을 잘 키우고 있었다. 전체 가정을 헤아려보니 제법 꽃의 개체가 많았다. 그래서 언덕배기 교회 마당에 꽃이 잘 피는 시기를 골라 마을의 화분을 모아서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뜻밖에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렇게 한두 해를 거치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다 보니, 꽃 감상과 더불어 우리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소개하고 농촌의 즐거움을 나누는 매개체로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 들꽃축제를 하면서 특별히 천대받는 풀, 보통 잡초라고 불리는 꽃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우선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본받고 싶었고, 또 가만히 보니 잡초의 꽃들이 상당히 예쁘기 때문이었다. 잡초의 꽃은 상당수가 작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만 하면 번지는 속도가 빨라서 성가신 애물단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렇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원하지 않은 장소에 난 잘못된 풀로 여긴다. 한마디로 경제성 있는 작물의 이해와 상반되는 잡초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풀에 대한 인간 중심의 정의이다.


이런 인간 중심의 정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농촌의 몰락을 불러왔다. 그렇지만 잡초를 사진으로 확대해서 담아보면 그 모습이 뚜렷하다.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생명의 충만함을 담고 있고,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서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깨우침을 준다. 달개비(닭의장풀)의 멋진 사진을 본 농민이 오히려 묻는다. ‘이게 무슨 꽃이냐?’고. 달개비라고 말해주니 잘 아는 이름에 멋쩍어하면서도 감탄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달개비를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되겠다는 말도 한다. 이런 가치의 발견은 농민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2. 농촌 아이들



나는 지금 농촌의 구성원으로 당연한 삶을 살고, 더해서 초등학교 스쿨버스 기사로, 중학교 전교생합창단 지휘자로, 문화 기획자로 살고 있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일 중 하나가 농촌학교와 농촌 아이들이다. 아시다시피 농촌은 아이들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그 여파가 농촌학교의 폐교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 도입된 1982년부터 문을 닫은 전국의 초·중·고교는 3천725개교에 이르고, 앞으로도 현 교육부 정책 기준으로 보면 2천747개교가 폐교대상이다. 대다수가 농촌 지역 학교들이다. 


그동안 교육 문제가 농촌해체의 주범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특히, 문화 부분의 부족한 교육을 나름대로 보충하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겨울마다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문화여행이었다. 관광버스 한 대를 전세해서 전국의 문화 유적지와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 프로 스포츠 경기장, 각종 박물관, 방송국, 대학로 연극 관람, 인사동 탐사 등을 했다. 아이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면서 지역의 건강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현실 앞에서 작은 노력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역 초등학교가 통폐합대상이 되었고, 지역민들이 흔들렸다.



그러다가 학교를 살리기 위해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십 년째 스쿨버스 기사 노릇이다. 통폐합 절차를 밟으면서도 날마다 아침과 오후 시간에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KBS에서 이런 학교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면서,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전교생합창단을 만들었다. 그 후, 초등학교가 정상화 된 뒤에도 합창단 활동은 피아노 바이올린 교육과 함께 학교의 필수 과정이 되었다.


현재 지역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똑같이 학생 수 45명을 유지하고 있다. 음악 교육이 초등학교에서 끝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교장 선생님들과 의논을 했다. 우리 지역만이라도 음악만큼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년 과정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드디어 중학교에도 전교생합창단이 생겼다. 그리고 마땅한 지휘자가 없어서 내가 지휘를 맡았고, 수요일 오후에는 힘이 솟구치는 중학생들을 앞에 놓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중학교 아이들 45명의 얼굴이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실제로도 이 아이들이 유치원생이 되기 이전부터 곳곳에서 활동한 모습을 계속 사진에 담고 있다. 십 년째 내가 운전하는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들도 있다. 몇 년 전에는 300여 장의 사진을 추려서 ‘7년을 담은 희망의 노래’라는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간절한 농촌에서 이 아이들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 누구라도 이 귀한 선물들을 구별 없이 사랑하고, 잘 자라도록 가꿀 책임이 있다.



3. 커피



커피를 도무지 몰랐는데, 어느새 깊은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커피와 깊은 사이가 된 것은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매개체의 기능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커피가 워낙 보편화 되다 보니, 농촌에서도 커피 한 잔에 말문이 트이고 편한 자리가 된다. 커피를 알아가면서 몇몇 사람들과 즐겁게 커피 마실 공간을 만든다고 나선 것이, 지금은 함께 지역 자원을 네트워킹하는 일을 하게 됐다. 


힘을 모아 마을 바로 옆에 있는 아담한 신죽리수목원에 커피 마실 공간과 농촌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할 농산물직판장을 만들었다. 이 수목원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도시의 소비자들을 농촌으로 부르고, 지역의 좋은 자원을 연결해서 동반 상승하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지역 자원을 네트워킹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보령이라는 지역 이름을 브랜드로 한 보령커피와, 마찬가지로 보령 이름을 딴 보령유기농우유, 그리고 신죽리수목원 숲 체험센터를 묶어서 보령 커피 벨트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신죽리수목원 숲은 각 학교 진로체험 지원 장소로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커피 향기 날리면서 미시적 마을 관광을 진행하는 일이다. 



미시적 마을 관광이란, 농촌 자체가 볼거리라는 바탕에서 모든 농촌 자원을 여행지로 제공하는 일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셈이다. 학생 수가 적은 농촌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연을 헤집으며 뛰어노는 모습만으로도 도시에서 온 여행자들은 감동을 한다. 수목원 내 단풍나무 숲 속 커피 한 잔은 외국에 온 느낌을 받는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친환경 시골 밥상은 그 자체를 여행을 통해서만 먹을 수 있는 보약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시간별 바닷가 풍경은 무척이나 근사하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섬도 있다. 건강한 농수산물은 덤이다. 미시적 마을 관광은 여러 농촌 마을들과 연결해서 더욱 구체화할 생각이다.


오늘 우리 농촌은 여러 상황이 어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협력하여 건강한 기반을 만드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경제적으로도 네트워킹을 통해 고용 창출과 농산물 판매 및 소득의 동반 상승을 이루는 길은 더디더라도 가야 한다. 이런 일은 단순한 사업(?)의 영역이 아니라 농촌의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정부나 지자체도 이런 일을 계획하거나 실행에 옮기고 있지만, 거시적인 측면이 크다. 성과 위주의 정책은 결국, 기업형 경영체 외에는 감당하기 어렵다. 주목받지 못하는 소농들이 어울려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찾는다면, 그것은 ‘연대의 공동체적 관점’을 형성하는 일이다. 농촌의 기반이 원래 미시적 연결고리의 선상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이제 한편에서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농촌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대한다는 것은 같아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르므로 그 다른 것으로 서로 부족함을 채우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가끔 졸업식장 같은 곳에서 아이들의 장래 희망을 들을 기회가 있다. 저마다 장래 희망이 다르다. 그런데 이야기 하나하나가 즐겁다. 그 다른 희망이 모여서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란 기대가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다르므로 편중되지 않고 골고루 나눌 즐거움을 만드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이런 꿈은 농촌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다.



커피 한 잔에서 네트워킹의 실마리를 끄집어낸다. 다르면서도 같은 농촌과 도시가 한자리에 앉는다. 천천히 수목원을 거닐고, 마을 여행을 하고,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나눈다. 어찌 즐겁지 않을까.







현창 | 2016.11.02 17:27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네.그렇군요.아름다운 인생여정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셧습니다. 수고하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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