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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0 02:12


그의 이름은 이종철입니다.




지난겨울 내내 메말랐던 낙동학교 운동장이 봄비를 맞으며 푸릇푸릇한 싹을 내던 3월의 둘째 날, 낙동학교는 그보다 더 푸릇한 아이들을 맞이하는 입학식을 치렀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수라고도 할 7명. 그래도 그날 아이들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격려했던 이에게는 누구라도 붙들고 자랑하고 싶은 7명이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농촌공동체를 지탱하는 농촌학교를 위해 날마다 아이들을 실어 나르면서도 그 일을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던 이에게 새로 1학년이 된 7명은 그야말로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희망의 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흘 후, 학교가 끝나고 희망의 꽃이 꺾일세라 고이고이 집집마다 정성스레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그 누구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길을 간 사람. 아, 이제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별이 된 이여!




생각하면 꿈이려나.
교문을 지나는 노란 버스에 환한 웃음으로 가득 찬 아이들을 싣고 지금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데, 남은 이들은 그저 봄바람에 눈물이나 실어 보내야 한다니···




돌아보면 그가 지나온 길은 절대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이들을 위해 스쿨버스 운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5년 전은 낙동학교가 그야말로 존폐의 갈림길에 선 시간이었습니다. 학생 수 부족으로 말미암은 교육 당국의 통폐합 방침에 학부모들은 흔들렸고, 급기야 아이들을 읍내 학교로 전학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밤늦게까지 입학적령기의 아이들 가정을 찾아다녀 봤지만, 아이들이 정말 없었습니다.

어디서든지 아이들이 학교에 오겠다고만 한다면 어느 곳이든지 데리러 가야 할 그 때, 예순이 다 된 나이에 그가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아이들도 없다는데 그냥 학교를 통폐합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통폐합이 발전적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에서 통폐합은 스스로 북돋워야 할 힘마저 잃는 일입니다. 한 번 통폐합이 되면 다시 학교의 문을 여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불쏘시개마저 없는 타다 만 숯덩이가 된다고 할까요?

지금 농촌은 힘을 잃은 나머지 학교 하나가 없어져도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통증을 느낄 이들도 없습니다. 이미 많은 학교가 없어졌고,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 구호에 밀린 나머지 농촌이 마치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당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계속해서 정상적인 일로 치부된다면 우리 사회의 건강, 또 크게 말해서 나라의 미래는 결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장 기본적인 일만 생각해도 농촌을 이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다는데, 학교는 농촌 현실의 척도입니다.




아무튼, 희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적정 수라는 수치만을 가지고 학교 통폐합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땅에 아이들이 있고, 저 아이들의 발걸음이 활기차게 움직이는데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희망의 중심이었습니다. 동문회의 힘을 모으고, 학부모를 규합하고, 지역민들의 의지를 모았습니다. 직접 운전대를 잡고 어디라도 아이들이 있으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도 미루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하기를 5년. 벌써 3년 전에 통폐합 돼야 했을 학교는 올해도 54명의 아이로 말미암아 기운차게 움직입니다.

통폐합 시간표 때문에 위축됐던 것을 다 털어내고 모든 교육활동은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읍내학교로 나가던 아이들이 계속 전학을 오고, 도심의 학교와 비교하다가 손주를 이곳에 보내야겠다고 결정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커지고, 혹시나 하고 학교를 방문했다가 아이가 다닐 학교에 크게 만족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서 노란 스쿨버스는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봄에는 개나리 잎이 흩어지고, 가을에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길을 따라 노란 버스가 지나가면 아이들 웃음소리가 논으로 밭으로 퍼져갔습니다. 일부러 허리를 펴고 같이 따라 웃는 농민들 마음속에는 희망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노란 버스를 따라 희망의 바람이 계속 커질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그가 우리를 위해서 희망의 전령사로 남을 줄 알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우리 가슴 속에서 별이 되고 꽃이 되기 전까지는···.
그가 그렇게 우리의 눈물을 모두 가져가 버리기 전까지는···.




그의 이름은 이종철입니다.

여전히 먼 길 마다치 않고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갑자기 달려든 육중한 덤프트럭에 밀려 그 자리에서 별이 되고, 꽃이 된 그의 이름은 이종철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려 줄 아이는 그 와중에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몸으로 모든 고통을 안았습니다. 정신없이 달려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그는 한참을 부서진 스쿨버스 안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 터져버릴 것 같은 하늘이여! 아, 멈춰버린 시간이여!
















마지막으로 교문을 들어서는 그의 길 위에 사람들이 섰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그의 길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마지막 작별을 고합니다. 국화 한 송이가 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큰 선물을 그에게서 받았는데 달리 우리가 그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손을 잡습니다. 이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에게 인사를 합니다. 우리는 늘 같은 길 위에 있다고. 당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의 전령사라고···.




그가 없는 운동장은 쓸쓸하게 보이지만, 그가 디뎠던 자리엔 어제보다 더 푸릇한 싹이 나오고 있습니다. 눈물을 닦고 다시 보니 푸릇한 싹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직은 꽃샘추위로 바람도 만만치 않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쑥쑥 솟아오릅니다.

아,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가방을 던져놓고 운동장에서 뜀박질할 때면 그는 여전히 노란 버스를 운전해서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교문을 들어설 것이라고. 그의 이름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그의 모습으로 운전대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아이들이 달려가고 문이 열리면 아이들을 맞는 그의 웃음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희망을 잃지 않는 농촌공동체는 용기를 낼 것이고, 학교를 찾는 발걸음은 힘 있게 움직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견딜 수 없이 슬프지만, 그의 이름으로 슬픔을 달랩니다.
견딜 수 없이 아프지만, 그의 이름으로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의 이름은 이종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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