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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9:36





일본 후쿠시마현(福島) 스가카와시(須賀川市) 3월 24일 아침.
양배추 농사를 짓던 농민(64)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지진과 쓰나미의 공포 속에서는 오히려 생명을 어루만지는 힘으로 버텼지만, 그러나 방사능 오염이라는 희망을 삼키는 늪을 벗어나기가 죽기보다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한 농민의 죽음이 무척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언론에서는 농민으로만 표기된 그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산 채소 일부에 대해 ‘섭취제한’ 지시를 내린 다음 날 “후쿠시마 채소는 이제 끝났다.” 언뜻 목이 메는 중얼거림을 남기고 세상과 이별을 했습니다.

지진으로 자신이 살던 집과 창고가 파괴됐을 때는, 그래도 밭에 7,500여 포기의 양배추가 무사했기에 그는 농민으로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수확을 할 준비를 했습니다. 더구나 그는 30년 이상 유기농 재배에 나서 스스로 개발한 퇴비 등으로 토양개량을 계속해 왔고, 양배추는 10년 가까이 종자 개량 등을 통해 고품질의 종자를 생산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농협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 지역 초등학교 급식에 양배추를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신경 써서 재배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안전한 채소를 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유서는 없었지만, 영농일지는 23일까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였기에 양배추의 유통 및 섭취제한 지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제한 지시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방사능 오염 속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희망도 거둬들였을 것입니다. 반평생에 걸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생농법에 힘쓴 한 사람이 자연조화보다 더 지독하게 인간의 욕심이 녹아내리는 땅에서 마치 제물처럼 스러졌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지만,
그러나 당신을 알 것 같습니다. 아니, 또렷하게 당신을 압니다.

양배추 하나하나 어루만지던 당신의 모습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농민의 모습이 배어 있습니다. 공생농법을 좇아 퇴비를 머리맡에 두고, 점차 사람이 먹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우치는 당신의 모습은 이 땅에서도 낯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함께 후쿠시마의 꿈도 이제 끝났을지 모릅니다.
깨끗하고 반영구적이며 저렴하면서 안전하다는 원자력발전소가,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도시 곁에는 못 가보고 농촌으로 온 날부터 도시의 꿈을 대신 꾸던 비극이 그 ‘만약에’ 의해서 실현된 날, 무너져 내린 것은 원자력발전소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타마무라의 시금치 세슘 2만 2000베크렐 검출. 다무라시의 시금치 세슘 1만900베크렐 검출. 니시고무라시의 비타민채 세슘 9600베크렐 검출. 언론은 숫자로 방사능 오염을 말하지만, 그러나 숫자로만 이야기하기에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고통이 너무 큽니다. ‘다 끝났다’는 당신의 마지막 말은 너무나 정직합니다. 애잔한 울림은 혹여나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울림조차 받아주지 않는 공허함은 당신의 몸보다 더 차갑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죽음이 슬프다기보다 아픕니다. 당신의 죽음 속에는 이 땅의 또 다른 농민의 모습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땅의 권력에서 밀려나고 애써 가꾼 농산물이 외면당하고 생매장 살처분 무덤 앞에서는 마른 눈물 훔치고 보상수용의 유혹 앞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모습. 혼자서 맞서기에 너무도 왜소한 모습은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든 4대강 사업이 몰려오든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든 같이 밀려드는 여전한 이유 앞에서 스스로 돌아서게 합니다.



당신이 선명합니다.
마치 오래 전부터 함께 있었던 양, 양배추를 닮았을 당신 얼굴이 다가옵니다.

오늘도 뉴스는 당신이 떠나간 땅이 얼마나 오염되고 위험한 곳이 되었는지 그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느라 다른 여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구 전체가 흔들립니다. 비가 오면 방사능 비 맞을세라 바람이 불면 방사능 바람 맞을세라 숨고 감추고 이런저런 걱정으로 사람들이 멀어집니다. 가을 절임배추도 봄 소금 사재기 때문에 울상 짓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을 기억함으로 희망을 삼키는 늪이 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억의 연대(連帶)로 당신의 마음이 홀씨처럼 지구 곳곳을 날아다니기를 기원합니다.
가장 긴 반감기도 당신 앞에선 짧은 시간처럼 흘러가도록 땅에 숨을 불어넣어 주세요. ‘다 끝났다’는 말은 새로운 시작의 신호라고 알려 주세요. 원전 유치가 후쿠시마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양배추 한 포기가 후쿠시마를 아니, 지구를 살려내는 꿈을 같이 꾸게 해주세요.

그렇게 같이 있다면, 곳곳에서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도쿄전력 사장은 당신을 몰라도 머리맡에 퇴비를 놔두는 사람들이라면, 자연의 조화 속에 공생농법을 펼치는 사람들이라면, 고마운 마음으로 함께 먹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의 모습을 그려낼 것입니다. 당신의 몸도 따뜻해지겠지요. 봄기운에 흙을 뚫고 나와 양배추 싹으로 보여지고, 튼실한 몸 뒤척이며 향기 날리면 이곳저곳에서 쑥쑥 나오는 다른 싹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을 압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듯 당신에게 이별의 인사를 합니다.

21세기의 시간이 이렇게도 막막할 줄 당신은 정말 몰랐겠지요.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양배추 섭취제한 지시가 풀릴 것인지 몰랐기에 당신은 그만 시간의 끈을 놓았겠지요. 당신이 놓은 시간은 이제 낯설게 변한 당신의 땅에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누구도 그 시간의 끈을 당길 힘이 없기에 당신에게 이별의 인사를 합니다. 당신은 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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