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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야기

회복을 위한 전환

마을여행 들꽃마당 2020. 8. 10. 13:56


1. 가까운 마을에 가게가 하나 있는데, 가게 입구에 자목련 한 그루가 소담하게 있습니다. 잎이 무성해서 시원한 그늘막을 쳐놓은 것처럼 마을 사람들 쉼터 역할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기 참 좋은 곳입니다. 날씨가 조금 괜찮다 싶으면 늦은 오후에는 어김없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보는 사람도 아늑하고 잠시 지나쳐도 마음은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기세등등하면서 마을 사람들 발길이 드문드문해졌습니다. 자목련이 한 번 피고 지고 푸른 잎 다시 풍성해도 의자는 먼지만 수북합니다. 올해는 다 흐트러졌습니다. 코로나 19 여파는 작은 마을마저 빈자리를 만들고, 정겨움을 막아섭니다. 
작년부터 충남 교육행복지구 사업 일환으로 보령에 마을학교를 만들고 마을과 학교가 함께 아이들과 놀고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올해는 주저주저하다가 두 달 전에야 겨우 시작을 했습니다. 마스크로 아이들 얼굴을 가리고 눈만 빼꼼하게 바라보니 낯선 풍경도 만들어집니다.

2. 사실 마을이 위축된 것은 코로나 19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미 작년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에 축산이 주요 농업인 우리 마을을 비롯한 이 지역은 모든 것이 멈춰 섰습니다. 음악회도 멈추고, 마을 축제도 멈추고, 이웃을 돌보는 손길도 주뼛거립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금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만 경기도 포천, 강원도 화천 등 북쪽 지방 야생멧돼지에게 발견되고 있어서 확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국적으로 여전히 비상상태이고, 곳곳 거점소독소에서는 축산 관련 차량 방역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축산은 농촌에서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농촌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자들은 인플루엔자의 독성과 다양성이 ‘축산혁명’에서 비롯됐다는 가설을 세우고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축산업은 농촌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큰 숙제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이전에 구제역이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2011년 1월 이후 길거리에 걸려 있던 현수막 문구는 비장했습니다. “모이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고, 해외여행도 하지 맙시다!” 코로나 19 시대인 요즘은 “몸은 멀게, 마음은 가깝게!”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마을은 아예 “코로나 19로 외부인은 마을 출입 절대 금지!” 이렇게 걸어뒀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문구가 바뀔까요?

3. 아무튼, 2011년은 악몽의 해였습니다. 2010년 말부터 경북 안동에서 시작한 구제역이 빠르게 번지면서 보령도 구제역으로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지역이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소 172마리와 돼지 2만2880마리가 매몰 살·처분당했고, 전체로는 9만 마리 가깝게 땅에 묻었습니다.

무엇보다 구제역에 걸린 소·돼지 살처분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당시 뉴스를 인용하면, 작업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죽음이 임박한 소와 돼지가 얼마나 우는지… 울음소리가 고막이 터질 정도로 귓가를 때리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려고 비닐을 씌워 땅에 묻은 암롤박스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작업은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지기가 다반사였고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습니다. 참담한 상황의 연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보령뿐만 아니라 당시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4. 구제역을 비롯한 바이러스 전염은 이미 정치,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그동안 구제역에 맞서면서 연이어 조류인플루엔자(AI)와 신종플루와 맞서야 했고, 메르스와 아프리카돼지열병, 그리고 코로나 19…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요. 동물 간 전염을 넘어 사람에게 감염이 되고, 사람들 간 감염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세계적 유행으로 나가는 방식. 국가에서 국가로, 드디어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는 팬데믹이 뜬금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까요?

통계를 보면, 1951년 이후 신종 전염병은 거의 한 해 또는 서너 해 걸러 등장했습니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인간 이상으로 창조적인 활동을 합니다. 막아서면 더 강한 독성과 더 강한 내성으로 진화해 새롭게 나타납니다. 요즘 코로나 19 사태 후 부쩍 많이 인용된 <전염병의 문화사> 저자인 아노 카렌은 전염병을 피할 ‘마법의 도시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어떻게 대응하느냐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아노 카렌이 말하는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행태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는 ‘무지와 탐욕과 좁은 시야’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는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에서 감염병 방역과 예방을 넘어서 근본적이고 통합적인 산업과 환경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합니다. 
코로나 19 극복을 위해서는 너와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함께 보는 일이 중요한데,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도 배운 만큼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5. 고기를 먹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기 섭취량이 늘어나면서 거대 농축산기업의 세계적인 유통망 확장이 현재 비극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익 추구를 위해 생물 다양성이 무시되고 가축의 유전형질을 축산업의 목적에 따라 조절하면서 면역 방화벽이 사라진 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병에 취약한 개체들이 식용으로 제공되고 있고 감염 초기 단계 대응이 어렵게 됐습니다. 정치가 경제를 조절해야 하는 데 경제의 힘이 정치를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다국적 기업의 활동은 정치를 종속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치가 끌려다니면서 그 부작용을 지구촌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습니다.

대규모 농업이나 축산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막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는 생물 다양성의 붕괴로 연결되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야 할 기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자연이 상품화되면 질병에 대한 생태학적 회복력은 떨어지고 전염병에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우리는 코로나 19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6. 앞으로 코로나 19 여파로 인해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눠진다고들 합니다. 이후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삶의 근본 변화가 수반돼야겠지요. 특히 더 늦기 전에 ‘식량 생산의 근본적 변화’에 논의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의 저자 롭 월러스는 농업이 자본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경작지 수준과 지역 수준 모두에서 생물종 다양성을 늘리고 전략적으로 야생 상태를 재조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식량 공급체계를 사회화해야 한다며 환경과 농민을 보호할 생태적 농법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되면 환경 파괴와 통제 불가능한 전염병을 방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보령에서 농민들과 일반인들에게 유용미생물 사용을 권장한 것이 20여 년째에 다다릅니다. 유용미생물을 만들어서 생활에 이용하도록 나눠주고 있고, 특히 가축 사육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을 사료에 첨가도 하고, 청소라든지 후속처리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연구 결과를 보면, 미생물군의 다양성이 높은 환경에서 자란 가축들이 무균질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가축들보다 훨씬 건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식량 공급체계의 안정을 위해서는 소규모 생태적 농업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양한 소농의 활동이 생태계의 면역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원래 우리 터전의 기본이었습니다.


7.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녹색평론 故 김종철 발행인의 ‘이만한 국토와 몇천만 명이나 되는 인구를 가진 사회가 농업을 방기하고도 과연 미래가 있는 국가로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배짱이냐’는 말이 늘 맴돕니다. 
농업을 방기하면서 많은 사람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경제가 어렵다 입니다. 어렵다는 것은 욕망을 당위성으로 포장하고 성장의 덫에 걸려 헤매기 때문입니다. 경제 성장에서 헤매는 것은 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마치 구도의 길이 경제 성장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올해는 엄청난 장마로 인해 큰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이렇게 많은 고통을 주는 장마에 대해서 원인을 살펴보면, 경제 성장과 연결된 지구 온난화 문제 중 하나인 해수면 온도 상승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은 자연을 황폐화한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환경 전염병”이라고 마크 제롬 월터스는 <자연의 역습, 환경 전염병>에서 말합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전염병 출현만 그렇겠습니까?

자주 인용하는 이반 일리치의 말입니다. “좋은 삶이란 거창한 구조물을 건축하거나 뛰어난 문화재를 남기거나 하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이웃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가운데서 생을 즐기는 데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했던 일입니다. 지금은 어려운 일일까요? 팬데믹이 뜬금없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이제부터라도 삶의 길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8. 전환의 시작이 지금입니다. ‘식량 생산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농촌 마을에 농민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기 어렵다는데 굳이 농촌에 사람이 살아야 하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농촌에 농민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전업농이나 기업농으로 기계 농사를 지어서 식량 문제가 해결될까요? 우리는 압니다. 돈이 되는 농사만 짓는 기업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요.

사람은 돈이 되는 것을 떠나서 모든 것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합니다. 돈이 안 되는 농사도 농민의 몫입니다. 농업이 자본을 추구하는 산업이 되면 우리 몸은 무너집니다. 농민과 농촌의 문제는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가운데서 생을 즐기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여기엔 단순하게 농사짓는 기술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끝까지 간직해야 할 모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무너지는 일은 멈춰야 합니다.

건강한 생각, 건강한 사회로 전환이 절실합니다. 경제 성장도 이런 기반이 있어야 지탱하는 것입니다. 골고루 먹고, 골고루 살고, 골고루 돌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9. 마을가게 입구 자목련은 비를 맞더니 잎이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하지만 의자는 치워지고 없습니다. 코로나 19 발병 소식은 여전하고 가게도 일찍 문을 닫고 조용합니다. 마을 입구 축산거점소독소만 분주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은 아직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제역도 견디지 못하면 뛰쳐나오겠지요. 철새들이 날아오면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해 긴장해야 하고요. 코로나 19는 조심조심하면서 백신 개발을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도 돌아보면 마을 곳곳에 꽃마리, 봄맞이꽃, 개망초, 엉겅퀴, 강아지풀이 차례로 피고 지고, 제비꽃, 환삼덩굴, 쑥부쟁이, 쇠비름 등 많은 풀이 저마다 독특한 맛을 품은 채 자기 할 일을 합니다. 이렇게 모질게 비가 내리는 데도 농부는 밭을 쓰다듬고 논물을 조절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바이러스를 달래야 하고 유별난 장마를 견뎌야 하는 어려운 시기지만, 농부의 젖은 마스크가 내려지고 우리의 좋은 삶이 다시 회복하는 꿈을 키웁니다. 마을가게도 늦은 오후에는 사람들 발걸음이 이어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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