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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얼마 전에 다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대학은 ‘마을대학’입니다. 제가 거주하는 지자체(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대학입니다. 학기도 없고, 학년도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문을 열고, 필요하지 않으면 문을 닫는 학교입니다. 앞에 지자체 이름이 크게 붙는 마을대학. 대학이란 이름이 있어야 권위(?)가 서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주일마다 한 번씩 학생들이 모여서 마을에 관해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합니다. 참고로 학생들의 나이는 무척 많습니다. 50대 후반인 제가 젊은 편에 속하니까요.
여기서 잠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마을대학에 관해 설명을 곁들입니다. 물론 지자체에서 설명한 것이지요.
‘마을대학이란, 주민 주도의 상향식 개발로 살맛 나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수준 높은 강사를 통한 교육으로 전문성을 강화하며,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을의 노하우 공유로 농촌의 전통문화, 자연환경, 도시적 편익이 조화된 색깔 있는 마을개발을 위해 함께 모여 공부하는 곳입니다.’
몇 번을 읽어도 설명이 좀 어렵긴 합니다. 어쨌든, 현재 제가 참여하는 마을대학은 마을만들기협의회 회원과 각 마을의 위원장과 위원 등 30여 명의 학생이 등록했습니다.
제가 마을대학에 참여한 이유는 먼저 저를 아는 담당자의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사치레로 첫 시간 참석을 했는데, 나이 많은 분들 속에서 농촌과 마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만 재미가 들렸습니다. 지금은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는, 마을의 연대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다 보면, 각자 작은 농촌 마을이 아니라 이렇게 모여서 큰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 마음을 나눕니다. 다들 생각보다 말도 잘하고, 학습 과정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강사들은 헌신적으로 참여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을대학 교육 과정이 각 마을위원장의 역량 강화 및 조직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어서 교육은 계속 그렇게 이어지겠지만, 농촌의 현실을 보면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쌓이면 마을의 구석구석에서 새로운 모습들이 생겨나리라고 믿습니다.
2.
요즘 관심의 상당 부분이 마을과 협동에 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 모두의 기반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공동체입니다. 마을은 처음부터 짜임새가 잘 갖춘 곳은 아닙니다. 때론 느슨하고 때론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관계입니다. 공동체의 유익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제가 있는 곳으로 가끔 마을과 지역공동체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이 찾아옵니다.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일을 조금 하다 보니 소문이 부풀려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평범한 마을을 둘러보며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람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방문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마을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와 더불어 요즘엔 네트워크 공동체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몇 년 전에 들꽃마당에 ‘김도희작은도서관’이 들어섰습니다. 인터넷으로 도서관 이름을 검색하면 도서관이 세워진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도서관이지만, 김도희작은도서관의 사연을 알고 곳곳에서 책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책 사이에 넣은 편지 한장을 통해서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넓은 공동체를 느낍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떤 의무감도 없지만 슬픔을 사랑으로 함께 나누어 가지려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서로를 연결하는 이 공동체 정신에서 새로운 마을을 보고, 희망의 길을 찾습니다.
마을에서 모든 것은 한 부분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 달개비(닭의장풀)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을에서 이리저리 핀 꽃들을 사진에 담아 마을 축제 때 사진전을 하는데, 달개비의 멋진 모습을 본 농민이 오히려 묻습니다. ‘이게 무슨 꽃이냐?’고. 달개비라고 말해주니 너무도 잘 아는 이름에 멋쩍어하면서도 달개비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달개비를 함부로 없애면 안 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달개비도 구성원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지요.
모든 구성원은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별 볼 일 없지만, 농촌의 감흥을 두드리고, 나아가서 농촌에 깃들어 있는 문화를 끄집어내 마을의 가치를 살리는 일에 제 작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본래 농촌의 모습 자체가 훌륭한 문화라는 깨달음 속에, 그 가치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을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라고 여겨서 문화적 접근에 미미하지만 나름의 힘을 기울이고도 있습니다. 오늘, 일반적인 우리 농촌과 마을은 열악한 규모와 경제 사정으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마을 공동체에 애정을 갖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은 참으로 큽니다.
마을은 처음부터 전래적이고 자생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마을은 자본의 힘으로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을 느끼며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함께 삶을 나누는 공동체의 터전으로 나타납니다. 지금은 전환의 시대입니다. 농촌의 위기는 새로운 생명 시대로 나가는 기회입니다. 마을의 가치를 키워내는 데는 미래를 예측하는 즐거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번에 마을대학에 참여한 것도 이렇게 즐거운 상상력을 배우려는 것이고, 또 제가 가진 상상력을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3.
요즘 저는 마을을 거니는 공룡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 바닷가에서 최근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공룡 발자국화석이 발견됐습니다. 우리 지역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 아이들과 놀이를 갔다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뉴스에 소개된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번에 발견된 공룡 발자국화석은 30cm 내외의 원형 공룡 발자국 10여개로 보행렬을 이루면서 분포되어 있습니다. 충남에서 공룡 발자국화석이 최초로 발견된 이 지역은, 한반도의 공룡시대인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층이 해안을 따라 분포된 지역입니다.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한 성층이 바닷물의 침식 때문에 겹겹이 층을 이룬 절벽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어 1억 년 전의 공룡 발자국과 함께 1억 년 전의 지층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1억 년 전의 공룡이 바닷가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저도 지자체 요청으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바닷가 사진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2달간의 사진 촬영 후 공룡 마을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1억 년 전의 공룡이 말을 걸어온다는 상상 속에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 또한 공룡에 대한 상상을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사진 작업을 했습니다. 1억 년 전의 공룡도 마을의 구성원이 될 수 있고 마을을 유쾌하게 할 수 있다면, 지금 함께 하는 모든 구성원의 가치는 그야말로 말할 나위가 없지요. 마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미래’라는 말도 마을에는 썩 잘 어울립니다.
마을에 대한 상상력을 실제로 나누고 싶어서 마을 여행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촌 마을 자체가 볼거리라는 바탕에서 모든 마을 자원을 여행지로 제공하는 일입니다. 제 표현대로 하자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셈입니다.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가 진행한 마을 사업들은 경관(景觀) 사업이거나 수익과 관련된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물론 성과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요. 그러나 목적에 쫓기는 일이 잦다 보니 마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즐거움과 문화는 장식물처럼 취급당했습니다. 즐거움이 없는 수익 사업은 개인주의를 부추기며 공동체를 해체하는 주범입니다. 마을의 상상력의 보고인 이야기와 노래, 그리고 그 땅을 딛고 산 이들의 숨결과 역사가 스며있는 먹을거리와 삶의 터전에 대한 애틋한 마음들이 거의 사라져버렸습니다. 마을 여행은 그 흔적들을 찾아다니고, 복원하는 일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떡이 원래 크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관계 속에서 나옵니다. 산업화 사회 속에서 공장의 기계처럼, 기계와 같은 삶을 강요받는 사람들 모습 속에서 행복은 어느 곳에 자리할 수 있을까요? 기억들이 함께 공유되지 않는 행복이란 스스로 무너질 불안을 늘 갖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마다 있었던 마을 나무는 공동체의 기억을 듬뿍 안고 있다가 틈만 나면 마을 사람들에게 뿌려주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넓히면서 나무들은 뽑혀져 나갔고 기억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실, 마을 사업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공유하는 기억과 행복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 되지 않고서는 마을대학도 그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수익사업도 필요하지만, 마을이 갖는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도록 돕고,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마을을 살리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4.
마을대학을 다니면서 마을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마을대학 운영을 계속하면 좋겠습니다. 근래에 김용택 시인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시(詩)의 근원이 된 마을과 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야기였습니다. 마을이 시의 근원이 된다는 말이 제게는 마을대학과 결부돼서 새로웠습니다. 마을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무와 마을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무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마을에 대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나무에게 정면을 묻지 마라.
바라보는 누구에게나 정면이다.
나무에게 어느 쪽이 길이냐고 묻지 마라.
바라보는 모든 곳이 길이다.
나무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지만
자기 자리에 있으므로 모든 것을 알았고
바람이 불던지 눈이 내리든지 비가 오든지
세찰수록 오히려 양분으로 삼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잘 배운 것들보다 더 늠름해졌다.
모든 길이 정면이었기에
그 자리를 떠날 이유는 애초에 없었다.
나무를 바라보는 모든 것의 그늘이
된 이유가 그래서였다.
마을은 공동체의 숨결을 어루만지면서부터 시작되었고, 누구에게나 길이 됩니다. 그 마을이 지금은 비록 흔들리지만, 이렇게 마을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함께 삶을 나누는 공동체의 터전으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나무가 그 자리에 있으므로 기억을 공유하듯이, 마을이 거기 있으므로 행복을 나누면서 내일에 대한 상상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