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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합창(合唱)을 하다꿈꾸는아이들 2016. 4. 12. 12:15
(*7년 전인가요? 합창이란 이름으로 농촌학교의 고군분투를 다뤘습니다.
농촌의 상황은 여전하고 7년이 지나면서 초등학교와 더불어 중학교까지 존폐의 기로를 맞고 있습니다. 갈수록 어려움은 크지만, 낙동초등학교에 이어서 천북중학교에도 합창단이 생겼습니다. 낙동초등학교와 천북중학교는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학교입니다.
합창을 통해 농촌 지역의 교육 환경을 연결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길을 만듭니다. 나름대로 새로운 농촌교육이라고 할까요? 7년 전의 글 내용을 그대로 적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덧붙입니다.)
이제 꼭 십 년째 스쿨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는 보령시 천북면 낙동초등학교는 여전히 합창 연습이 한창입니다. 7년 전, 모 방송국의 음악 활동 다큐멘터리 촬영이 기반이 돼서 전교생 합창단이 생겼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합창을 하고 있습니다. 합창은 낙동초등학교에 많은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1학년은 악보를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악 활동 하나로 배우는 피아노도 도레미파솔라시도 건반과 씨름해야 합니다. 바쁘기 그지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즐거운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노래를 하는 시간은 생동감이 돕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모여 노래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부르는지 목소리가 자주 튀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보노라면 웃음은 저절로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가르치는 지휘 선생님과 함께 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우리 농촌에 희망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지난 7년 동안 헌신했던 지휘 선생님이 그만 결혼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합창단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아쉬움 속에서 이번에는 지긋한 선생님이 지휘자로 오셔서 새로운 합창단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여러 사람이 각각 소리와 화음을 맞추어 함께 부르는 노래를 합창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1900년 이후 서양음악이 보급되면서부터 합창이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함께 부르는 노래는 그 형식이 달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다만 요즘 우리가 보편적으로 합창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 훈련된 화음의 조화를 통해서 부르는 노래를 일컫습니다.
합창하면 아무래도 ‘합창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D단조 작품 125번이 떠오릅니다. 음악사상 최초로 교향곡에 합창이 어울려 연주됐지만, 합창의 선율이 더 또렷한 이 곡은 연주가 끝난 뒤 베토벤이 귓병으로 인해 박수갈채를 듣지 못하다가 독창자들이 그를 청중 쪽으로 돌려세워 주자 비로소 연주가 성공적인 것을 알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합창 교향곡에 더욱 감동을 하는 것은 소리의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무한한 고통과 싸워야 했고, 육체적인 건강의 악화와 가난에도 불구하고 고뇌를 맛본 환희를 사람의 소리를 통해 노래한 베토벤의 모습에서 삶의 의욕과 희망을 얻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사람의 소리는 악기가 갖지 못한 생명의 힘이 있습니다. 합창은 내가 소리를 내면서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와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합창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 혼자 고래고래 목청을 뽑기보다는 남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어줍니다.
마음을 열어젖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가 자유와 질서와 평화 속에 공존하면서 화음을 만듭니다. 그래서 합창은 모든 소리를 융화시켜서 아름답고 건강한 소리로 바꿔줍니다. 그러므로 노래를 못한다고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함께 소리를 모으면 멋진 합창이 되어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더불어 보태진 소리는 사랑이 됩니다. 그리고 보면 상처투성이인 우리 사회는 참으로 곳곳에서 합창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7년째 합창단을 운영하는 낙동초등학교는 올해 전교생이 45명인 농촌의 작은 학교입니다.
그동안 학생 수가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내년에는 더 아래 숫자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안타까움도 큰 학교입니다. 그러나 이런 학교도 현재 농촌 상황에서는 별것 이상입니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가 정한 통폐합 권고 기준대로라면, 통폐합 대상 학교가 면 지역은 초·중학교 모두 60명, 읍 지역은 초등학교 120명, 중학교 180명입니다. 아마도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학력인구 감소가 불 보듯 뻔하다며 소규모 학교를 통합해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부의 권고 기준대로라면 낙동초등학교가 있는 충남지역은 초·중학교 606곳 중 무려 40%인 243개가 대상입니다. 충북지역은 전체 학교 35%가량인 169개 곳이 통폐합 대상이고요. 강원도, 전라남북도 등은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오로지 학생 수만을 통폐합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교육부의 정책은, 마을 공동체의 지속 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정책입니다. 돈이 덜 드는 방향, 효율적인 방향, 이런 방향으로만 교육하게 되니, 그런 관점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란 참으로 먼 나라의 이야기 같습니다.
아무튼, 지역 내에 있는 천북중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합창단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중학교 합창단이 생기면 좋겠다고요.
이렇게 예능 부분에서라도 지역 내 교육 공동체를 형성하면 무엇인가 농촌에 희망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일 거라고 여겼는데, 중학교 교장 선생님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전교생이 45명인 중학교에도 합창단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전교생 합창단입니다.
농촌 구석이라서 지휘자를 제대로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유능한 지휘자 선생님에게 부탁했었는데, 일 년을 지도해보더니 중학생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휘를 그만뒀습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의 부탁도 있고 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제가 난감한 가운데 중학교 합창단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천북중학교는 열정적인 교장 선생님 덕분에 지난 몇 년 동안 매우 활기찬 학교가 되었습니다.
농촌의 구석진 곳에 있는 학교에서 벗어나 대단히 창의적이고, 특히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도 선정되었습니다. 또 전국에서 4개 중학교에만 주어진 행복학교 영역에도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갈 때마다 활기찬 아이들의 모습은 농촌에서 맛보는 시원한 샘물과도 같았습니다. 농촌의 학교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위한 훌륭한 학교가 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촌의 현실에서 천북중학교도 학생 수가 줄고 있습니다.
인근 읍 지역 중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는 지역민도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읍 지역만 돼도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그곳으로 보내고 싶은가 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교육 환경은 떨어집니다. 아이들의 공부에 교육 환경이 참 중요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보다 눈에 보이는 시설이나 조금 더 사람이 모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교육 환경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겠지요.
초등학교도 줄어들고 중학교도 줄어들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농촌에서 학교는 교육 현장이면서 마을공동체가 갖는 건강함의 척도입니다.
건강은 외부 요인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모습도 중요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만두지 않는 이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늘 앞에 있습니다. 작은 수의 공동체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노래가 울려난다면 어느덧 누구라도 같이 노래하고 싶을 것입니다. 합창하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의 합창 소리는 통통 튀는 생명의 소리입니다. 들을수록 설렙니다.
아직은 서툴고, 아니 앞으로도 계속 서툴지 모르지만, 저렇게 낭랑한 목소리가 우리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다면 농촌은 여전히 사람이 살만한 곳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학교는 언제나 그 자리에 늘 새롭게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지켜보면서 꾸는 꿈은,
우리 농촌에 더욱더 풍성한 합창 소리가 울려 퍼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전히 농촌을 지키고 있는 흙투성이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손을 잡고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을 것입니다.
혹여 노랫소리에 이끌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시 돌아온 이들이
건강한 흙더미를 고르면서 함께 화음을 만든다면 그것은
농촌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작은 아이들의 소리가 7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수요일 오전엔 낙동초등학교 합창단의 연습을 지켜보고, 오후엔 천북중학교 합창단 연습을 같이합니다. 물론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등하교 차량 운전은 계속하지요. 이제는 중학생이 된 아이들도 태워 나릅니다. 십 년째 가는 바닷가지만, 여전히 새롭습니다. 바다를 뒤로하고 아이들이 뛰어옵니다. 십 년 전엔 유치원생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듬직한 중학생의 모습으로 차를 탑니다. 차도 무겁습니다.
중학교 합창단은 초등학교 합창단보다 고분고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지휘 선생님이 좀 힘이 들었나 봅니다. 저야 유치원 때부터 잘 알던 사이라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어울립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구분도 없어지고, 아이들 얼굴에 마음이 즐겁습니다. 아마도 이 아이들하고 저하고는 깊은 인연이었나 봅니다. 지난번에는 교장 선생님 요청으로 중학교 입구 은행나무 길에 제가 그동안 찍었던 풍경 사진들을 걸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일 년 내내 사진 전시회를 하는 셈이지요. 오른쪽 길에는 마음에 감동을 주는 시(詩)들이 걸려있고, 왼쪽 길에는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 사이를 걸어가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이것도 함께하는 합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에 온 아이들과 다시 합창을 합니다.
우리가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어디에서 노래가 될까요?
황량했던 들판과 산이 형형색색 물들어 가고 풍성해집니다.
지난겨울 도대체 모두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내린 눈만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 얼어붙은 땅속에서 포기하지 않은 생명은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아이들 운동장도 따뜻해졌습니다. 넘어져도 가뿐합니다. 다시 일어나서 뜁니다. 7년 전에도 뛰었고, 오늘도 뜁니다. 응원의 소리가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힘을 얻은 합창이 더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