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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원래 기도하는 사람을 위한 음료였다.
기도의 장소가 사원인가 수도원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 믿음을 내보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신이 허락한 신비의 묘약이었다.
목적에 부합했던 커피는
그러나 스스로를 가두어 놓기에 너무 뜨거웠다.
커피의 향은 금욕의 땅에서 욕망의 문을 흔들었다.
기도는 하늘로 오르기 전에 커피 향에 익숙해졌다.
세상에서 커피는 바람이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커피는 유혹이었다.
커피를 축복하는 사람들은
커피에서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향을 느꼈다.
그것은 비극이기도 했다.
정치적인 커피는
개도국(아니, 어느 나라든)에서, 전쟁터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여전히
하나의 쓰임새로 욕망을 드러낸다.
초췌한 전투병이 커피 가루를 입에 털어 넣든, 공정무역의 이름 아래 숨든
에티오피아, 한 그루 커피나무는 그때 이미 알았을까?
사람은 모두 다르다.
커피도 모두 다르다.
커피에 대해서 어떻게든 말할 수 있지만
커피는 마시는 것이다(혹은 먹는 것이다) 외에는
커피에 대해서 자유로워야 한다.
아니, 커피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 세상이 와야 한다.
커피 한 잔에 깃든 모든 사람은 자유로워야 한다.지난 번에 연줄이 닿은
강릉 Coffee 'Bolld'에서 고맙게도 커피를 로스팅해서 여러 봉지를 보내줬다.
강릉 바다의 설레임이 봉지 안에서 부풀어 오른다.
즐거움은 혼자 마실 수 없어서 여러 사람을 모았다. 사람이 모이니 커피가 더 맛있다.
오늘은 과테말라산 커피이다.
보내 준 커피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 아직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