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호주 통상투자장관이 한국∙호주 FTA에 서명하기 사흘 전, 들꽃마당이 있는 신죽리 할머니들이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마을에 들어오는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건축을 반대하며 공사현장으로 투입되는 덤프트럭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모인 장소는 신죽리 농로(農路). 마을을 통과해서 건축현장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지만, 전략적(?)으로도 좁은 길이어서 막기가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올해 봄은 유난히도 더웠는데, 하필이면 행동개시한 날부터는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서 감기하고도 싸워야했습니다.
지금 우리 마을과 똑같은 상황이 경북 구미시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미시의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이 금오공대와 밀접한 지역에 들어서기로 하면서 금오공대 구성원들도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때는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구미시 축산단체와 금오공대의 갈등, 그리고 수수방관하는 구미시청이 얽혀서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금오공대는 성명을 통해 "이러한 시설이 들어섬에도 대학에는 사전 통보나 협의 절차가 없었다.”면서 “학습권과 생활권이 보장되는 거리로 입지를 이전하지 않을 경우 대학 구성원 등 3만 5천여 명의 금오공대 가족들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정부가 정한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허가 조건 중 가장 기본은 주민설명회 및 주민공람을 거친 후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라’는 것이 환경부의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의 설치 및 운영관리 지침’의 중요한 기본원칙이라는데, 어찌된 일인지 마을 사람들 대다수는 주민설명회는커녕 의견 수렴의 수자도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자체에서는 충분한 과정을 거쳤고 법적으로 문제없이 인허가를 내줬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자체의 그런 설명을 들은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는 것입니다.
금오공대의 상황을 보더라도 현재 농정당국이 일을 하는 태도는 인근 주민을 고려하는 모습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서류를 보면 직접 이해당사자인 주민과 민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허가의 선결조건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일이 진행되는 상황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을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이 얼마나 잘 밀어붙이느냐가 중요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이 좋아 민원 발생이 최소화 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라는 것이지, 이 말의 실체는 힘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택해서 무리가 가더라도 사업을 완수하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래도 금오공대는 동창회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3만 5천여 명이나 된다니 충분히 해볼만하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신죽리는 구성원이 백여 명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나이로 말할 것 같으면 젊은 사람이 하도 없어서 마을청년회 활동 연한이 65세까지고, 그나마 이렇게라도 젊은(?) 청년회원들의 비중은 50%도 될까 말까 합니다. 청년회원 상당수는 노인회에 속해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동안 사람 수가 적으니 시군 경계는 달라도 바로 이웃해 있는 마을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함께 막아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웃마을이 어느새 설득을 겸한 현장견학을 다녀온 뒤로 마음을 돌이키자 신죽리 사람들은 홀로 남아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원화시설 건축을 담당한 건축회사의 건축 시작 통보를 받자마자 덤프트럭들이 육중한 모습으로 흙을 싣고 농로를 따라 건축 현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서는 긴급방송을 하고, 할아버지는 물론 할머니들까지도 집에 있는 농사용 경운기와 트랙터를 가지고 농로에서 대치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늙고 수가 적은 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힘에서 딸립니다. 현장에 나온 경찰들은 할머니들에게 은근히 위압적인 말투로 불법 운운하기 시작했고, 평생 농촌에서 일만 했지 경찰과 맞서보지 못한 마을 주민들은 살짝 기가 꺾였습니다. 방법을 바꿨습니다. 나름 합법적 방법으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농로는 원래 농사를 짓기 위한 길이고, 농기계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차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덤프트럭 앞에서 경운기와 트랙터를 몰고 농로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대로 급한 농산물을 수확하고 키우는 짐승들에게 밥을 주고 오기도 하면서 사흘을 농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두들 체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고 허리도 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투쟁도 몸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더구나 덤프트럭들은 이제 마을길을 택하지 않고 아예 이웃 마을 경계선을 따라 현장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농촌은 갈수록 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생존권조차 지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초고령화, 조손가족, 홀로 사는 노인, 약화되는 지역공동체, 무엇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농촌경제는 우리 농촌의 풍경을 그야말로 황량하게 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이렇게 된 원인은 어느 하나만 콕 집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섞여 있으니까요.
들꽃마당이 있는 신죽리는 여기에다가 환경 문제까지 겹쳐서 그야말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역 내 축산 환경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령시의 축산폐수처리시설이 몇 년 전에 들어왔고, 지금 가축분뇨자원화 시설도 들어오려고 하니까요.
그동안 정부가 주야장천 이야기했던 “농업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요? 신죽리 사람들의 삶이 전혀 무시되고 있는 이 현실은 오늘 농촌의 비극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 복지를 말하지만, 정작 농촌 복지는 갈수록 소외되고 있습니다. 농촌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의료서비스 체계 개선 등을 위한 복지 예산이 벌써 수 년 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편성한 2014년도 농촌 복지 관련 예산은 모두 4천650억 원으로 작년 4천192억 원에 비해 11%인 458억 원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농촌 복지 예산이 늘어난 것은 국민연금 보험료와 건강보험료 지원금이 작년 2천820억 원에서 올해 3천241억 원으로 15%인 421억 원이 자연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농촌 현장에서 꼭 필요한 주거와 의료서비스 등의 복지 예산은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됐습니다.
농촌의 주거환경은 무척 열악합니다. 하지만 농촌주택개량사업을 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한다고 생색낸들 어떡합니까? 이렇게 자연환경이 침탈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왜 정부나 지자체는 힘없는 농민들을 겁박하며 의견을 무시하는 것일까요? FTA는 꼭 농민의 눈물과 자동차를 바꿔야 성공하는 것일까요? 농업이 경제 성장을 위한 희생양이 돼야 한다는 데도 모두들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정말 우리 모두는 앞으로도 먹는 문제는 걱정 없이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호주 총리 공식방한 만찬에서 "호주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오랜 기간 준비돼 온 한국과 호주 FTA 협정에 서명을 하게 돼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던 날 할머니들의 투쟁은 잠시 멈췄습니다.
이날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장장 7시간에 걸친 회의를 하면서 농로의 투쟁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걸쳐 살아온 땅이 이렇게 위협을 받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비분강개가 넘쳐났지만, 우선은 우리의 내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마을의 갈등요인 중 하나였던 축산 문제들을 끄집어 내놓고 이번 기회에 하나씩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우리의 존엄을 지키며 행복추구권과 재산권 보전을 위해 정당한 권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행복추구권은 소극적으로는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를 추구할 권리며, 적극적으로는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권리로 규정합니다. 행복추구권은 삶의 질을 지키려는 권리입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침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면서 공공복리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신죽리 농민의 삶의 질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만, 더 이상 안 된다면 이제는 오직 투쟁뿐입니다. 비록 몸은 견디기 어렵고, 일은 계속 밀려도 마음이 떨려서 견딜 수 없습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통해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리고 생산한 농산물에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생산한 것을 팔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돈을 벌었다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했고 이제 이것을 나누었다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70년을, 80년을 살아왔습니다. 행복과 자부심이 환경에 무너지고 애정을 담은 농산물과 땅의 가치가 하락된다면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분명하게 요구합니다. 규정된 대로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라고.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마을 사람들이 확실히 알게 해달라고. 힘없는 농민들이라고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말라고. 사업의 정당성보다도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훼손당하는지 그 조사부터 먼저 해달라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늙은 우리의 투쟁은 끝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