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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22:02


1. 

찬찬히 창문에 붙어있는 단어를 봤다. 임대. 또렷하게 글자가 박혀있었다. 고개를 들어 건물 위쪽 상호 간판을 봤다. 코끼리 만두. 분명히 코끼리 만둣집이었다. 순간 마음 한 귀퉁이가 아려왔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들렸지만, 그래도 잘 되기를 바라고 또 길게 가기를 바란 가게였다. 가끔은 장사가 잘 안되는 것 같아서 걱정도 들었지만, 이렇게 가게를 정리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주인아주머니가 그동안 무척 힘들었었나 보다. 아니면, 다른 일이 생겼을까?


“저기, 만두 2만 원어치만 주세요.”

늦은 오후,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새참을 사러 나왔는데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질 않았다. 이러저리 둘러보는데 만둣가게에서 따뜻한 연기가 무럭무럭 나온다. 순간 만두가 좋겠다고 생각하여 자연스럽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몸이 마른 주인아저씨가 빚은 만두를 마무리하면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2만 원을 내밀었다.

“만두를 2만 원어치 사버리면, 다음 사람은 만두가 없잖아요!”

아저씨 목소리 톤이 좀 높았다. 당황했다. 

“만두가 많이 없나 봐요. 그냥 있는 만큼 주세요.”

“아니, 얼마가 됐든 만두를 다 가져가 버리면 다음 사람은 만두를 못 가져가잖아요.”

“그럼 얼마만큼 가져가야 하나요?”

“절반만 가져가세요. 다음 사람도 가져가야 하니. 오늘은 만두 만드는 일이 다 끝나서 더 만들지 못해요.”

속으로 ‘만두 2만원어치도 팔지 못하는 가게가 어디 있다고 이렇게 말할까. 상호는 코끼리인데 장사는 토끼만도 못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왠지 주눅이 들었다. 만 원어치만 싸 들고, 옆집 김밥 가게 가서 나머지를 샀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다음날부터 만둣가게 앞을 지나면 나도 모르게 진열대에 만두가 얼마만큼 놓여 있는지 보게 되었다. 이상했다. 만두 진열대에 만두가 많이 쌓여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만두가 얼마 남지 않으면 마음이 두근거렸다. ‘저러다가 또 어떤 사람이 저걸 다 사려고 들어갔다가는 나처럼 무안당하지.’ 그런데 차츰 주인아저씨 말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도 가져갈 것을 생각하고 가져가세요.’ 지금까지 어떤 물건을 사더라도 다음 사람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가능하면 빨리 팔아야 좋으니까. 지금 사는 사람이 중요하지 언제 올지 모르는 다른 사람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꼭 시장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분은 왜 이렇게 할까?




두부를 좋아해서 가끔 두부를 사는데, 그날도 오후에 읍내 마트에 들렸다. 판매 장소에 가보니 하필이면 두부가 한 모만 있었다.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이걸 내가 가져가면 두부 좋아하는 다음 사람은 얼마나 실망할까?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다. 망설이는데 직원이 보더니 두부 한 판을 들고 와서 그 자리에 놓고 갔다. 가득 찬 두부를 보니 마음도 풍성해져서 얼른 두부를 집어 들었다. ‘다음에 누가 올지 몰라도 이젠 즐겁게 사서 가겠지.’ 집으로 가는 길에 코끼리 만둣집이 보였다. 갑자기 웃음도 나왔다. 만둣집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는데 만둣집 주인아저씨에게 무언가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나와 이웃이 있고, 우리는 서로를 몰라도 나름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 후로 이따금 만둣가게를 갔다. 그런데 차츰 주인아저씨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주머니 혼자서 열심히 일하고 손님을 맞았다. 소문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만둣집 주인아저씨가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고. 그러다가 이야기는 더 세밀해지더니 급기야 주인아저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궁금하던 차에 그 집을 잘 안다는 이에게 그동안 그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었다. 소문 그대로 투병 중이던 주인아저씨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갑자기 만두 한 입 베어 물기도 가슴이 아려서 힘들어졌다. 지난번엔 카센터 주인아저씨가 암에 걸려 치료하느라고 오랫동안 운영하던 카센터 문이 닫히더니 만둣집은 그보다 빨리 이 세상을 떠났구나. 이제 만두는 누가 만들고 오지 않을 사람마저 어떻게 배려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만둣집 가마솥 연기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아저씨 대신 주인아주머니가 계속 만두를 빚었다. 어쩌면 몰두해서 만두를 빚어야 오랜 시간 쌓인 정을 정리하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만둣가게를 지나는 길엔 일부러라도 만두를 확인했다. 그렇게 코끼리 만두가 계속 이어지기를 응원했다. 그런데 임대라니. 문을 닫으면 아예 기다릴 사람조차 없는 코끼리 만두는 어디 가서 만날까. 만두를 사든 사지 않든 늘 풍성한 만두 찌는 연기에 느긋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어떻게 변할까. 다음 사람은, 그다음 사람은…




2. 

“동수 씨 때문에 요즘 참 심란합니다.”

“네?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마을 이장이 답답한 투로 말을 걸어왔다. ‘동수 씨 때문에 심란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마음에 무언가 걸리면서 이장 이야기를 재촉했다.

“마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동수 씨 집이 경매에 넘어갔어요. 저도 그 때문에 재판 중이고요.”

전혀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누가 동수 씨 집을 경매에 부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장은 왜 재판을 받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장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동수 씨가 사기꾼 꾐에 넘어가서 알지도 못한 집 두 채를 덜컥 자기 명의로 이전했어요. 집 두 채를 자기 명의로 한다니 좋았던가 봐요. 두 채를 명의 이전 받으면서 그놈들한테 그 대가로 50만 원도 통장으로 받았고요.”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동수 씨를 꾀어서 집 두 채 명의를 이전하도록 했는지, 또 동수 씨는 어떻게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이장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보니 자세히는 몰라도 동수 씨 앞으로 사기꾼으로 볼 수 있는 누군가에 의해 집 두 채가 명의 이전된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집을 산 대출금까지 동수 앞으로 돼 있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동수 씨 앞으로 명의가 이전되자마자 집을 팔고 도망을 하였고, 법적으로 집주인인 동수 씨 앞으로 은행에서 대출금 납부 독촉이 왔다. 결국, 돈을 갚지 못하자 지금 사는 집과 땅이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동수 씨는 십 년도 훨씬 전에 우리 마을에 들어와서 마을 안에 버려지다시피 한 집에서 혼자 살았다. 아들과 딸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동수 씨가 그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보니 어느 틈에 자녀와 연락이 끊기고 서로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동수 씨는 비록 혼자 살지만, 마을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늘 마다치 않았고 그런 동수 씨가 일손이 필요한 농촌에서 듬직했다.

우리 지역 대기업 한 곳은 해마다 한두 가정을 선정해서 사랑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기금을 모으고 회사가 일정 부분을 지원해줘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조립식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지만, 직원들이 꾸준히 마음을 담아서 돈을 모으고, 또 여기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어서 해마다 사랑의 집이 한두 채씩 늘어나고 있다. 

우리 마을 이장은 이런 동수 씨를 위해서 사랑의 집 입주 신청을 했다. 선정되기까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집을 지을 땅이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땅이 있어야 했다. 동수 씨가 낯선 곳에 땅을 갖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마을 이장은 신청 절차가 수월하지 않자 결단을 내렸다. 본인의 땅을 내주기로 한 것이다. 농민들이 땅에 대해 갖는 애착(愛着)은 무척 크다. 그래서 남을 위해 자기 땅을 내어주기로 한 마을 이장의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했다. 




땅을 동수 씨 앞으로 이전하면서 혹시나 해 이장은 땅을 근저당 잡았다. 동수 씨 재산을 누구도 건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간 진행된 과정을 들으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은행에서 이장에게 근저당 포기를 강요한 것이다. 은행 측은 마을 이장과 동수 씨가 애초에 서로 짜고 땅 명의를 받으면서 근저당한 것이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참 난감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을 어떻게 이장이 알 수 있었을까. 이장이 근저당 설정 포기를 하지 않자 은행 측이 소송을 냈고, 이장은 태어나서 전혀 생각지 않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을 받았던 충격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이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재판 1심에서 이겼고, 불복한 은행 측이 항소해서 얼마 전에 2심 판결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2심에서도 승소를 했는데 마음은 계속 불편하다고 했다. 2심에서 재판장이 은행 측에 ‘본인이 자기 땅을 어려운 사람에게 내주고, 혹시나 해서 다른 사람이 장난하지 못하도록 근저당을 잡았는데 그것이 왜 문제라고 생각하느냐?’면서 은행 측에 말했을 때, 은행 측은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했다. 참 명쾌한 재판장의 말이다. 

어쨌든 2심까지 끝났는데, 아무래도 은행 측이 이대로 멈출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경매에 나간 집을 보러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많이 방문하는데,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이 집이 그 집인가 하고 살펴보는 바람에 마을 분위기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동수 씨가 성격상 이런 일로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것 같아서 그나마 낫다고 덧붙인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무겁게 이야기하는 이장을 보니 내 마음도 무척 무거워졌다.



3. 

그래도 우리 이장 같은 사람이 없다. 동수 씨가 아무리 안쓰러워도 적당히 돕고 말았으면 됐을 텐데, 땅까지 내주며 도우려고 한 모습은 새삼 큰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큰사람임이 틀림없다. 나야 가진 땅 한 평 없지만, 설령 있더라도 이장처럼 하기엔 그런 그릇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그래도 이렇게 움직이는 건 마을 이장 같은 사람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내 주머니에서 무엇이라도 꺼내서 돕고 싶은 그런 사람이 진정한 사회의 지도자이다. 꼭 공직에 오르거나 명예를 갖고 있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어떻게 내 삶이 건강해질 수 있을까.

내 옆의 아픈 사람이 내 몸 같아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어야 한다.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세상의 변화는 경제의 발전이나 과학의 발전, 또는 사회의 진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지식보다 함께 사는 지혜를 갖지 않으면 진정한 세상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로한 남편을 요양원에 입원시킨 후 혼자 지내던 이구자 할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바로 옆집은 아니지만, 가까이 사는 이정숙 할머니가 갑자기 이상한 마음이 들어 이구자 할머니 집으로 갔다. 쓰러져있는 이구자 할머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얼른 119구급차를 불렀다. 천안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의사는 어떻게 해도 완치는 어렵다고 했다. 다급한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다. 머리를 박박 깎고 누워있는 이구자 할머니가 생소하면서도 애처로웠다. 집에서 쓰러질 때 이정숙 할머니가 달려가지 않았다면 훨씬 더 위태로웠을 것이다. 그나마 이 정도도 다행이라고들 한다. 앞으로 몸 상태가 어떻게 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래도 옆에서 돕는 사람들이 있고, 이구자 할머니가 짓던 고구마밭 걱정을 하며 틈나는 대로 고구마를 캐주는 마을 사람들이 있어서 더뎌도 건강회복은 될 것이라고 믿는다. 




4. 

배려하면서 돕고, 도우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다만 함께 사는 일이 꼭 즐거운 것은 아니다. 최근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가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책을 냈다. 부제는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탐사기'라고 했다. 혼자는 외롭다. 그렇지만 함께한다는 것도 간단치는 않다. 괴로울 때도 많다. 갈등의 시작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야 힘을 얻는다. 함께 살되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가야 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르게 살 수 있다. 사실 그것이 원래 사는 방식이다. 

코끼리 만둣집이 곳곳에 있으면 좋겠다. 파는 사람은 살 사람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만두가 좋아도 혹여나 누가 뒤에 있을까 생각하면 좋겠다. 내 땅을 줘서라도 함께 살도록 하는 마을 이장이 삼천리강산 곳곳 마을마다 있으면 좋겠다. 조금씩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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