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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2 23:57


보령시에 살면서 가까운 마을 여행을 가끔 떠납니다. 이하 보령시 마을들입니다. 천북면 학성리, 주교면 유곡리, 미산면 남실리, 청소면 죽림리, 주포면 보령리, 청라면 향천리, 성주면 성주리, 오천면 영보리 등. 참으로 멋진 보령입니다.


특히 올 11월에 보령에서 ‘마을 만들기 충남대회’가 열리는데, 대회의 의미를 잘 알기 위해서라도 마을 여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번 마을 만들기 충남대회 조직위원장도 맡고 있어서 제 딴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마을 만들기에 대해서는 아래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무튼, 마을 여행은 마을을 몸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마을에는 소담하면서도 부드럽고, 그리고 차분한 시간이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마을은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사는 곳입니다. 국어사전은 마을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 그렇습니다. 마을은 농촌에서 함께 사는 곳입니다. 즉 생활과 생업 그리고 쉼과 놀이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일단 사전적인 마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마을에 관한 일, 특히 마을 만들기가 정부의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부가 정한 마을 만들기의 중요한 주체를 꼽는다면 행정, 전문가 혹은 활동가, 그리고 주민입니다(마을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이 세 박자가 잘 맞아도 마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을은 원래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애써 꾸밀 필요도 없습니다. 마을은 평가받는 곳이 아니라 어느 때든지 우리 삶의 터전이라는 것만 잘 기억하면 됩니다. 그래도 마을 만들기를 한다면, 본래 마을이 품고 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를 잘 드러내면 됩니다. 여기엔 어떤 원칙이나 방법이 꼭 하나여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현재 농촌 마을의 주민들은 나이가 많습니다. 십 년 후의 마을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마을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 미래를 향한 길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찬찬히 보면 마을이 가진 숨겨진 자산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이 가진 힘을 우리가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을의 미래를 위해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적절한 시스템은 마을을 잘 지탱하게 합니다. 그러나 마을 만들기라는 시스템 때문에 마을의 가치가 묻혀서는 안 되겠지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농업입니다. 농업은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고, 또 농업이 농민 일방의 일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서 사는 일이 어떻게 일방일 수 있겠습니까? 농촌이든 도시든 우리 모두의 일이지요. 최근에 일어난 살충제 달걀 사태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한 마을에서 건강한 농업이 이루어집니다. 


마을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 없지만, 마을 만들기를 해야 한다면 경쟁력 우선이 아니라 마을의 사회적 자본을 끄집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홀로 살 수 없어서 생겨난 마을의 힘이 건강한 삶의 기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해가 질 무렵 마을 길을 걸으며 느끼는 행복을 누구에게라도 나눠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마을 여행은 새로움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이 새로움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미처 보지 못한 즐거움을 끄집어내는, 그러니까 마을에 원래 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을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잘 아는 것이 물론 많겠지만 의외로 모르는 것도 꽤 있습니다. 모르는 그 속에 새로움이 들어 있습니다. 



마을 여행의 즐거움은 큽니다. 지구의 그 어떤 지역도 내가 사는 마을의 포근함과 아름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 마을부터 시작해서, 이어지는 여러 마을의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유명한 관광지나 천혜의 절경이 있는 장소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알려지지 않은 마을 구석구석도 잔잔한 감흥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요즘 제 나름대로 마을의 정취를 가장 잘 느끼는 곳은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입니다. 


비록 제가 사는 보령은 아니지만, 보령시 성주면이나 미산면 도화담에서 1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이웃 마을이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습니다. 부여군 외산면은 보령시 미산면과 붙어있습니다. 김시습 부도가 있는 무량사로 유명하고, 요즘은 외산면에서도 반교리가 부쩍 유명해졌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마을 주민이 된 영향이 크고, 정성껏 쌓아 올린 마을 돌담 풍경의 반응이 크기 때문입니다. 반교리는 보령 마을 여행에 잇대어서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차분히 걷다 보면 저절로 쉼을 누릴 수 있는 마을입니다.


“산골 마을이라 원래부터 돌이 많아. 농사짓고 집을 세우려 땅 파면 나오는 게 그저 돌이지, 돌.” 현재 등록문화재 제280호로 지정된 ‘부여 반교마을 옛 담장’은 몇 년 전 주민들 손으로 다시 쌓은 것입니다. 이 사업을 지원했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마을 안쪽에 휴휴당(休休堂)을 짓고 5도 2촌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다는군요. (*5도 2촌 -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생활한다는 뜻이라는데…) 


부여 반교리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반교리가 나름대로 마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교리 마을을 통해서 배우고 얻어야 할 것이 꽤 있습니다. 지원을 잘 받았거나 지리적 조건이 좋아서만 오늘의 반교리 마을이 된 것은 아닙니다. 마을 그대로의 모습을 잘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편의시설 하나 없지만, 처음 온 사람도 마을길을 천천히 걸으며 가슴 깊이 쉼을 느낄 수 있습니다. 편안함이 다시 오도록 만듭니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새로운 것을 반교리는 잘 끄집어냈습니다.



지난 9월에 필리핀 루손섬 북쪽 산족 원주민들이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지역 주민들도 2년째 찾아옵니다. 사실 그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반교리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최근 반교리에서 느낀 생각을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인 양 나누긴 했습니다. 경제적 동력을 얻는 것은 무척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까지 간직한 삶의 터전이 미래를 향한 중요한 힘이라는 것을 말한 정도입니다.


마을 여행을 하면서 몇 번 가게 된 외산면에서 요즘 새로운 실험(?)에 돌입했습니다. 외산면을 지나다가 문득 새롭게 단장한 외산장터를 봤습니다. 오일장이 서는 장터입니다. 그런데 아주 작고 생동감이 없어 보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민들과 나누었습니다. 외산면의 오일장은 주변 부여장이나 보령 대천장과 흐름을 맞추기 위해 관례로 여는 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장이 열려도 한두 시간이면 장이 파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관례적이 되었어도 오랫동안 이뤄진 장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몇 분과 논의하다가 무량사라는 전통 사찰도 있고, 부여와 보령 사이에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외산면의 특징을 살려서 토요일에 여는 토요 장터를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8월 중순부터 외산면의 토요일은 토요 장터가 열리고 있습니다. 토요 장터라고 하니까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은 놀이터 같은 곳입니다. 행정의 지원을 받지 않은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열리는 장터입니다. 장터의 주인공은 현재까지 열 분의 할머니들입니다. 덩달아 열리는 마을 청년들의 협동조합 장터에서 국수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합니다.


할머니들은 토요 장터에서 우선 서로 이야기하고 웃기에 바쁩니다. 그러면서 가져온 먹을거리도 나눕니다. 간혹 지나가는 몇 분이 농산물을 삽니다. 작은 액수인데도 얼굴에 웃음은 함빡 입니다. 마을 여행을 하면서 연결이 됐지만, 생각을 같이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진지한 일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을 위해 주변에서 마을 여행객을 모집할 생각입니다. 장터에는 사람이 있어야 활기도 차고, 할머니들도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직 들쭉날쭉 하지만,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사진에 담으려고 합니다. 지금 논의하기는, 토요 장터는 마을 사람들이 참여할 때까지 3년 정도는 지속하기로 하고, 이런 이야기를 2년 정도 지나면 작은 그림책으로 엮어보는 일도 하자고 했습니다. 농촌 마을에 조금이라도 활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외산면 청년들이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마을을 위해 지속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기도 해서 작은 보람도 있었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마을 만들기 대회가 있습니다. 대회라고 하니까 서로 겨루는 일 같은데, 시합이 아니고 함께 모여 서로 사는 마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건강한 마을을 이루는 정보도 얻고, 도전도 받고, 격려도 하는 대회입니다. 전국 마을 만들기 대회는 올해 10회째로 지난 9월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이번에 조직위원장을 맡은 충남 마을 만들기 대회는 4회째입니다. 


현재 전국대회 말고 광역자치단체에서 마을 만들기 대회를 하는 곳은 충남입니다. 엉겁결에 이런 일을 맡았지만, 그래도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대한 새로운 마음도 생기고, 미처 몰랐던 아름답고 즐거운 마을 모습도 발견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마을 만들기 대회는 마을 알기 대회입니다.


마을 여행 한 번 떠나시지요. 지난 추석 연휴 때는 무척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즐기고 왔습니다만, 우리가 사는 마을 여행도 그에 못지않게 즐거움이 큽니다. 가까운 곳을 놔두고 멀리 가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수 있지만, 전혀 뜻밖에 즐거움을 발견할 때 그 기쁨을 크게 담는 것도 사람의 마음입니다. 



보령 마을 한 군데를 소개하고 글을 마칩니다. 보령시 미산면 남심리는 보령시와 서천군의 경계에 있는 마을입니다. 남심리에서 5분만 가면 냉면으로 유명한 서천군 판교 마을이 나옵니다. 예전에 교통의 중심지였던 판교 마을 냉면은 참 맛있습니다.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판교와 비교하면 남심리는 참 한적합니다. 그러나 조용한 모습 속에 쉽게 놓지 못할 매력이 있는 마을입니다. 특히, 남심리에서 보령시 주산면으로 넘어가는 산길은 멋집니다. 


지금까지 많은 길을 가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충청도 길 중에 보령시 성주면에서 부여 외산면까지 가는 길과 청양군 칠갑산 길, 아산시 신정호에서 송악면 동화리로 넘어오는 길 등을 아름답게 꼽고 있는데, 마을 여행 중에 본 남심리에서 주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아마, 옛날 보령의 산적은 여기 다 모였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마을은 살아있습니다. 차근차근 여행하는 즐거움이 쌓여있습니다. 먼 길 가기 전에, 가까운 마을길부터 한 번 다녀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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