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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22:49


제가 사는 보령시 천북면을 둘러보는 유쾌한 농촌 여행 출발지는 신죽리수목원입니다. 수목원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숲길을 30분 정도 걸은 후 본격적으로 여행에 나서는데, 그 첫 번째가 낙동초등학교입니다. 낙동초등학교는 무척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농촌 학교를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여행에 나선 이들이 학교의 모습을 보고, 그 부드러운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학교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이를테면,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는 모습, 바이올린이며 피아노며 합창을 다 같이 하는 모습, 소담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잠을 자는 모습, 잔디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 그대로 스쿨버스로 뛰어가는 모습을 눈여겨보면, 누구나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입니다. 


학교를 들여다보는 이들은 무엇보다도 애잔한 마음 때문에 아이들과 더욱 함께하고 싶어집니다. 전교생은 이제 30명, 유치원은 10명, 모두 40여 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데, 내년에는 더 줄어들 것 같은 상황은 아름다운 학교 모습과 더불어 저절로 애틋한 마음이 생겨나게 합니다. 사실, 어느 농촌학교치고 학생 수가 늘어나길 기다리지 않는 학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현실은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줄어들고, 특히 농촌은 아이들 뜀박질 소리조차 듣기 어렵게 됐습니다.



교육부는 근래에 소규모학교 통폐합 권고기준을 새로이 마련하였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면 지역 초등학교는 60명 이하, 읍 지역 초등학교는 120명 이하, 도시 지역 초등학교는 240명 이하가 통폐합 대상이 됩니다. 참고로 기존 정책은 읍면 및 도서벽지 60명 이하, 도시지역 200명 이하였습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전국의 17개 시도에서 초등학교만 1,907곳이 통폐합 대상이 됩니다. 참고로 전국 초등학교는 2016년 기준 6,232곳입니다.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였을 때 무려 30%가량의 초등학교가 사라져버립니다. 자료를 보니까, 강원도가 306개교로 45.5%, 경상북도가 465개교로 46.6%, 전라북도가 351개교로 46%, 전라남도가 416개교로 46.3%의 학교가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학교는 사라질 수 있다고 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이렇게라도 있는 동안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한마을에서 같이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낙동초등학교와 함께하기’가 십 년하고도 일 년이 넘었고, 저도 40대 후반에서 꽉 채운 5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동선에 글을 쓰며 동행한 지도 십 년이 넘었습니다.

비록 급료는 없지만 그래도 스쿨버스 기사가 된 지난 시간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사실 그동안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일정이 겹칠 때도 있어서 힘도 들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가고 나니 아이들 하나하나 눈에 아른거립니다. 돌이켜보면 며칠처럼 금방 지나버린 것 같습니다. 십일 년 전, 학교 통폐합 소식에 불안해진 학부모들이 절박하게 회의를 하고 마음을 모으는 과정에서 제가 맡아서 해야 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여러 사람이 우리 학교를 살리자는 일념으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사실 가끔은 정말 노력하는 만큼 희망이 생길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불쑥 들기도 합니다. 농촌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아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있는 마을의 청년회 나이가 슬금슬금 65세까지 올라간 상태이다 보니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거의 대다수는 손주들까지 초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지요. 그리고 보면 아직 초등학교 신입생이 몇 명이라도 있다는 자체가 젊은(?) 농촌이라고 말해도 그리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정말 오늘 농촌의 현실에서 지역 학교가 이미 폐교가 된 지역이 얼마나 많은지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농촌에서 학교 문제는 지역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학교는 단순히 학교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을의 미래입니다. 65세 노인이 청년회원이라는 농촌 현실은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후의 농촌은 자연스럽게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이론적으로 문제의 해결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젊은 사람들이 들어 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그러면 아이들도 생기고, 학교는 통폐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다 인지하니까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픕니다.


그래도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것이라도 시도를 합니다. 친환경 농업에 대한 작은 실천과 더불어 건강한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주변 환경 만들기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서도 소득을 내며 살 방안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우리나라 농촌 현장 이곳저곳을 다녀보면서 도움을 얻기도 합니다.



몇 년 전, TV에서 중국 네이멍구 사막을 생명의 땅으로 바꾸고 있는 ‘인위쩐’이라는 여자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순간 모든 생각이 정지되었습니다. <사막에 숲이 있다>는 인위쩐이 이뤄낸 기적 같은 일을 다룬 책 제목입니다. 네이멍구 마오우쑤 사막 안 징베이탕이라는 마을을 숲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막은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곳으로 사막화 현상이 매우 심각한 지역입니다. 하지만 인위쩐과 그의 남편 바이완샹이 20여 년 동안 나무를 꾸준히 심어온 결과, 나무와 채소와 꽃으로 둘러싸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그만하라고 하였지만 인위쩐은 포기하지 않고 피땀을 흘러가며 80만 그루에 이르는 나무들을 심었습니다.


그 전에 그런 감동을 한 것은, 프레데리크 백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었습니다. 장 지오노의 원작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인데, 이 작품은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자연이 어떻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외로운 양치기는 황무지에서 도토리 파종을 비롯해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씨 등을 멈추지 않고 뿌립니다.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황무지는 황폐한 땅에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비옥한 토지로 변화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든 변화는 힘없는 한 노인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제 모습을 알기 때문에 저렇게 엄청난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절망을 가슴 한 구덩이에 내지르고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서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할 사람에게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그가 나타날 때까지 잠시 그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아침 7시 40분부터, 그리고 오후 4시 30분부터 스쿨버스 핸들을 잡습니다. 차 안에서 아이들을 보면 작은 희망도 같이 보입니다. 참 묘한 기쁨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시간 동안에 큰 슬픔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봄바람에 실려 사람들 마음을 빙 돌아 날아간 일입니다. 그 이름이 날아간 자리에는 여전히 웃고 있는 아이들 얼굴과 조금도 망설임 없이 운동장을 지나는 아이들 발걸음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이종철’입니다. 

그가 저를 따라서 스쿨버스 운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낙동초등학교가 그야말로 존폐의 갈림길에 섰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생 수 부족으로 말미암은 교육 당국의 통폐합 방침에 학부모들은 흔들렸고, 급기야 아이들을 읍내 학교로 전학시켜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밤늦게까지 입학적령기의 아이들을 찾아다녀 봤지만, 아이들이 정말 없었습니다. 어디서든지 아이들이 학교에 오겠다고만 한다면 어느 곳이든지 데리러 가야 할 그때, 예순이 넘은 그가 힘 있게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지금 농촌은 힘을 잃은 나머지 학교 하나가 없어져도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통증을 느낄 사람들도 없습니다. 이미 많은 학교가 없어졌고,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 구호에 밀린 나머지 농촌이 마치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당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계속해서 정상적인 일로 치부된다면 우리 사회의 건강, 또 크게 말해서 나라의 미래는 결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장 기본적인 일만 생각해도 농촌을 이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학교는 농촌 현실의 척도입니다.


그는 동문회의 힘을 모으고, 학부모를 규합하고, 지역민들의 의지를 모았습니다. 직접 운전대를 잡고 어디라도 아이들이 있으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통폐합 시간표 때문에 위축됐던 것을 털어내는 큰 힘이 되었고, 교육활동도 덕분에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속에는 슬픔과 희망이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먼 길 마다치 않고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갑자기 달려든 육중한 덤프트럭에 밀린 그는 그 자리에서 별이 되고 꽃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노란 버스를 운전해서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교문을 들어서는 그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아이들이 달려가고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는 그의 웃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운동장 한 귀퉁이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써서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누구라도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를 가득 담아가기를 바랍니다.



루쉰의 <고향> 마지막 구절을 떠오릅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내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는 길을 가면서 어느 순간,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설렘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7년째 되던 해에 사진 300장을 골라서 ‘7년을 담은 희망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초청장도 보냈는데, 초청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넣었습니다.


“낙동초등학교는 지난 7년 동안 산길, 바닷길, 논길을 걸어서

함께 가는 길을 만들어 왔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굳게 붙잡고

허허벌판을 지나고 숲길을 돌아서서 희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문이 열려 있는 학교에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꿈꾸는 일 또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꿈꾸는 일에 사진기를 들이댔습니다.

2007년 3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7년의 순간을 담았습니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공연장에서, 하굣길에서, 산길 바닷길에서….

그 많은 사진 가운데는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마저도 희망의 연속이란 것을 알기에

모든 사진을 모아서 낙동 아이들 사진전을 엽니다.


다시 용기를 내서 계속 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농촌 공동체의 중심인 학교에 아이들 소리로 가득 차는 일은

언제나 신나고 행복한 일이란 것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돌아보니 정말, 지난 시간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낙동초등학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폐교가 단순히 낙동초등학교만이 아닌 우리 농촌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없어져 가는 것들이 부지기수인 농촌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고, 학교를 지탱해야 하는 마을 공동체의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낙동초등학교와 함께 찬찬히 흘러갔습니다.



현재 낙동초등학교는 언니 동생 모두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학교의 존립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농촌의 상황은 십 년 전 모습이 되풀이됩니다. 그러나 지난 십 년 동안 배운 것은, 현재에 충실한 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있으므로 학교가 있어야 하고, 마을이 있으므로 생명의 터전을 일구는 일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외로운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현재의 황무지에서 도토리 파종을 계속했습니다. 비옥한 땅으로 변하는 것은 그도 알지 못하는 미래의 일입니다.


농촌 학교가 십 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속 가겠습니다. 다시 십 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 몰라도, 오늘은 아이들과 웃습니다. 힘껏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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