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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1 00:34



1. 세월에 녹아든 슬픔.


대천에 나갔다가 가끔 대천동 갈머리주유소 앞을 지날라치면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생각난다. 그가 쓴 관촌수필의 무대인 관촌마을이 그 뒤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문구(1841~2003) 선생은 한국 문학에 다시 나오기 어려울 문장가이자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쓴 작가라고 한다. 특히 선생이 경험한 농촌과 농민의 문제를 글로 써서, 소설의 주제와 문체까지도 농민의 말투에 근접한 사실적인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내가 소설가로서 이문구 선생을 좋아하는 이유이고, 내 가슴 속에 이문구 선생이 자리 잡은 것은 그의 가족사 때문이었다.


이문구 선생에게는 깊은 슬픔을 담은 가족사가 있다. 그가 열 살 때 터진 6․25는 집안을 풍비박산 냈다. 남로당원이었던 아버지가 살해되고, 집에서 병으로 요양하고 있던 둘째 형도 끌려가 죽음을 맞고, 셋째 형도 부친에 대한 연루 혐의로 대천 앞바다에 산 채로 수장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조부도 세상을 떠났고, 화병을 앓던 모친도 세상을 떠났다.

어찌 이문구 선생뿐이었을까. 그 시절, 선생처럼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도 당시 대천 앞바다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이들 때문에 질긴 슬픔을 꾹꾹 누르고 살아온 가정이 여럿 있다. 세월이 어쩔 수 없다고, 전쟁이니 그렇다고 체념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가슴 속으로 비통(悲痛)을 삼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어렵다. 


2. 우리는 힘든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지난한 근현대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몸부림을 쳤던가. 전쟁의 시대는 멈췄고, 가난의 시대도 뒤로 물린다고 하지만, 또 다른 삶의 전쟁과 정신의 빈곤함이 몰려오면서 치열한 몸부림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비극은 격랑과도 같은 세월의 틈새에서 언제든지 튀어나올 준비를 하였으며, 과연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본 대로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무자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그것이 무슨 격(格)이 있어서 스스로 움직였을까. 그것을 키운 것은 사람의 탐욕이었다는 것을 애써 말해서 무엇 하랴.


문제는 슬픔이 너의 슬픔이었다는 것이다. 애잔한 마음이야 나도 들고, 안타까움이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해도 여전히 너의 슬픔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삼풍백화점에서, 성수대교에서, 대구지하철에서, 용산에서, 쌍용자동차에서, 제주 강정마을에서,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 경주 리조트에서, 송파구 세 모녀의 동반 자살 앞에서, 수확 철 논밭을 뒤엎을 수밖에 없는 농부에게서, 그리고 진도 저 참혹한 바다에서…. 이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열거하기도 힘든 슬픔 들은 너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3. 여전히 다른 눈물


한바탕 선거 바람이 휘몰아치며 지나갔다. 몇 사람은 이번 선거가 무척이나 슬펐던 것 같다. 내가 무심해서 그랬는지 지금까지 선거운동을 하면서 그렇게 북받친 눈물을 쏟는 선거를 본 적이 없다. 왜 그렇게 눈물을 즙 짜내듯이 쏟았는지 모르지만, 선거와 눈물은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도 그렁그렁한 눈으로 기회만 주어진다면 눈물을 쏟고 싶은 후보들도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결코 떨어지면 안 된다는 눈물어린 호소가 들어 있었지만, 과연 그 눈물에 유권자의 슬픔은 얼마만큼 담겨져 있었을까?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지난 호에도 썼던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로 인한 신죽리 할머니들의 눈물이 마르기 전에 그 마음이 더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한 표의 중요성이 혐오시설의 건축을 막을 수 있는 신죽리 할머니들의 마지막 위안이었다면, 지방선거에 나온 유력 후보자들은 신죽리보다 더 많은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 이용자들의 표에 마음이 가 있었다. 

결국, 선거도 약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기 보다 힘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 해주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은 할머니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었다. 땅바닥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신죽리 할머니들의 슬픔은, 잘 살게 해주겠다며 표를 요구하는 후보자들의 슬픔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의 눈물은 그들의 눈물이었으며, 신죽리 할머니들의 눈물은 애초에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신죽리만은 아닌 비극적 일상 앞에 서 있는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4. 너의 슬픔으로만 남는다면


슬픔이 너의 슬픔으로만 있다면 나의 슬픔도 나의 슬픔으로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슬픔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시스템이나 정책이 없어서일까. 오히려 그런 것은 남아돌고 정작 안 돌아가서 문제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안다. 내 슬픔이 아니니 공감이 부족하고, 뒷북 대처가 생긴다. 눈물이라도 흘려 나도 슬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내 슬픔이 아니니 마음과 달리 눈물은 생성조차 어렵다. 생각은 입을 통해서 무례한 언어로 표출되고, 우왕좌왕하는 국가는 무능한 모습으로 자신의 속살을 내 보일 수밖에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슬픔을 너의 것이 아닌 우리의 슬픔으로 삼는 일이다. 내 살이 찔리고 내 뼈가 부서지는데 누가 명령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누가 부질없는 생각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까. 우리 슬픔이면 가지 말라고 막아도 더 가까이 갈 것이고, 맨손으로라도 쇳조각을 찢으려 할 것이고, 나는 남아도 너는 나가라고 밀어낼 것이고,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면 같이 대성통곡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슬픔이 된다면 사람보다 돈을 숭배하는 가치관의 무상함을 깨달을 것이고, 국민이 두려워서 원칙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닫는 그것이 바로 비극을 이기는 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의 슬픔만이 아닌 나의 슬픔이 되고 우리의 슬픔이 된다면, 그 누구라도 먼저 일어서서 손을 붙잡고 있을 것이다. 


슬픔을 이기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같은 슬픔 속에서 우리 자신을 힘껏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믿을 때만 가능하다. 건강한 사회는 슬픔을 함께 하는 사회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슬픔이 오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막아내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를 꿈꾸지 않으면 안 된다. 비극적인 생환자 제로의 사회에서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이 슬픔이 진실로 우리의 슬픔이 될 수 없다면, 물살이 맹수처럼 거칠고 빠른 데서 유래했다는 맹골수도(孟骨水道)는 여전히 너와 나의 슬픔을 나누어서 모두 집어삼키는 괴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



5. 우리는 서로의 눈물에서 힘을 얻는다.


내가 사는 마을에 이제 70세가 다 된 할머니(내 눈에는 젊은 새댁 같지만) 한 분이 최근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4기였다. 췌장암은 경과가 가장 좋지 않은 암으로 알려졌다. 본인도 당황하고 듣는 이웃들도 당황했다. 5년 생존율이 7%에 불과하다니 기가 막혔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울음부터 터트렸다. 그냥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 몸의 아픔을 느끼며 우는 울음이었다. 나도 울었다. 늦은 밤에 서재에서 나오는 순간에도 불현 듯 생각이 나고 깊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한마을에서 함께 살아왔던 여러 사람들이 그러했다. 

서울의 아산병원에서 이제는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받는데, 아들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가 끝나면 농촌집으로 내려온다. 이웃을 만나고 손을 붙잡고 격려의 말을 듣는다. 모두 긴장해서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길게 말을 안 해도 눈물이 맺힌 눈동자는 위안이 된다. 내가 보기에는 서울 병원의 치료보다 어쩌면 더 효과가 있는 치료법인 것 같다. 항암치료 때문에 얼굴은 약간 야윈 것 같지만, 모습은 오히려 생기가 돈다. 사람도 약이 되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서로에게 힘이다.


한 때 ‘사람이 희망이다.’를 정치적 구호로 사용한 대선 후보자가 있었다. 당시 그 말이 참 좋았다. 그렇게 원하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권력이 아무리 많아도 희망은 그 위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도 사람이 희망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리고 조금 더 덧붙여졌다. ‘나 아닌 네가 희망이다.’라고. 네가 희망이어야 너의 눈물이 우리의 슬픔이 되고, 언제라도 튀어나오려는 저 탐욕의 비극에 함께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국가개조란 말이 유행이다. 정부 시스템을 근본부터 뜯어고친다고 아무리 말해도 국가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너를 분리하고 너의 슬픔을 외면한다면 모든 것은 그대로이다. 국가개조는 네가 희망이어야 가능하다.

 

 4월은 바닷속 깊이 가라앉아 있고 봄날은 갔지만, 너의 가슴에서 내 가슴으로 이어진 노란 리본은 오늘도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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