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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 15:38

임실을 다녀온 여운을 뒤로한 채, 

다음 날 아침 일찍 경기도 안성엘 다녀왔다.

작은 갤러리에서 여러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는데, 

오원(吾園) 장승업이 그린 '국화'가 있었다.


비교적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우나 단숨에 그려낸 필력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무심코 나이를 보니, 그가 산 세상이 지금까지의 나와 얼추 비슷하다.

본시 장승업에 대한 친근감이 있었으니 지금 그의 그림은 더 반가웠다.

갤러리에 머문 시간 중 절반 이상을 그의 그림 앞에 있었다.

욕심에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 장을 담았다.

조명 때문에 위아래 농도가 일정치 않다.





가만히 그림을 보면서, 

장승업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를 생각했다.

붓을 잡고 화선지를 흘깃 본 후

가운데부터 줄기를 간단히, 그리고 부드럽게 아래로 그렸을 것 같다.

그리고 애초에 그가 그려 넣고자 했던 국화 자리 앞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이제 조금 더 신경을 써서 국화를 그리고, 가운데 줄기에 국화잎을 그렸을 것 같다.

다시 아래 줄기를 그리고 잎을 넣은 후, 

위 공간으로 가서 한 번 힘을 주어 줄기를 위로 내치고 잎을 그린 후,

맨 위 세 개의 잎 중 오른쪽 잎을 마지막으로 그린 후 붓을 놓았을 것이다.

아니, 이건 내 생각이니까... 

아마도 장승업은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왼쪽 잎을 마지막으로 점 찍듯이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가볍게 한 쪽으로 화선지를 밀어놓았을 테지. 

술 한 잔 찾으면서.


어쩌면

다가오는 겨울 앞에 선 쇠락한 조선의 모습을

마지막 가을을 반추하는 국화의 모습으로 그린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부풀려 생각한 것인가

아무튼 나의 가을에도 국화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에도 국화의 여운이 길다.



......

오원 장승업은 조선 말기의 화가. 호방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력으로 생기 넘치는 작품들을 남긴 조선왕조의 마지막 천재 화가로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화가로 불린다. 산수화, 인물화, 화조영모화, 기명절지화 등 모든 회화분야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양식을 확립했으며, 현대 화단에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장승업의 오원(吾園)이란 아호는 1세기 가량 앞선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와 혜원(蕙園) 신윤복처럼 나도[吾] 원(園)이라는 것이다.


1843년 헌종 9년에 태어난 장승업은, 장지연이 쓴 '일사유사(逸士遺事)'에 따르면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고무친의 처지로 수표교 근처에 사는 이응헌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며 기거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 공부할 기회가 없어 글자를 못 배운 그는 주인 아들의 어깨너머로 글을 깨우쳤다. 이응헌은 중국의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글씨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재력을 지닌 여항 문인이었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 있는 원‧명 이래의 명인들의 서화를 접하고 그림에 눈이 트이게 되었다. 우연히 장승업이 그린 그림을 보고 그의 천재성을 확인한 이응헌은 비록 천한 신분의 하인이지만 장승업의 숨어 있는 재능을 아끼고 지속적으로 그를 후원했다.


그는 조선 왕조의 쇠락해가는 국가의 운명을 지켜보며 화가로서 일생을 살았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조선 초기 세종 연간에 활동한 안견, 그리고 조선 후기 영조·정조 연간의 문화적 황금기에 활동한 김홍도와 정선보다 훨씬 열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승업은 이들 대화가들 중 누구 못지않은 왕성한 창작력과 고도의 세련미 넘치는 미감을 보여주었다. 장승업은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몹시 싫어했는데 이런 성격이 그림에도 전해져 강렬하고 활달한 필법으로 이전의 문인화와는 전혀 다른 화풍을 개척했다. 장승업의 신운이 넘치는 작품세계는 암울했던 19세기 후반에 시대를 밝히는 찬란한 예술혼의 승리였다. 장승업은 1897년 그의 나이 55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 수 없을 테지.

......



갤러리에 들어가면서 담은 가을 한 장.



<클릭하면 조금 더 클게 볼 수 있습니다.>



갤러리 옆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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