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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8 18:49


처가댁이 있는 안동에 갈 때마다 지나는 마을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 신죽리와 신덕리처럼 같은 면내에서 처가댁 마을과 붙어 있는 마을입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그 마을에는 나이 일흔이 되도록 혼자 산 분이 있었습니다.

그의 평생은 극심한 가난과 병과 함께 지내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광복 직후 귀국했지만
가난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져 어려서부터 나무장수와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으로 힘겹게 생활하였습니다.
생활이라는 말보다 하루를 견뎌내는 일이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십대 후반부터 폐결핵과 늑막염, 신장결핵, 방광결핵, 부고환결핵을 앓았고,
한 때는 거지생활을 했습니다.
29살 되던 해에 수술로 콩팥 한 쪽을 들어냈고, 방광도 들어냈습니다.
의사는 2년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때(1966년)부터 평생 인공신장을 차고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31살이 되던 1968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일직면 조탑동에 있는 일직교회 문간방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예배당 부속건물로 조그마한 흙집이었는데 외풍이 심해
겨울엔 동상에 걸렸다가 봄이면 낫곤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곳에서 아픈 몸을 추스르며 열심히 교회 종을 치고,
교회학교 교사도 하면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났다가 그냥 죽는 게 억울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969년에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에 응모한 것이
‘강아지 똥’이란 동화였습니다.
상금 1만원을 받았는데, 그 상금에서 5천원을 떼어 새끼 염소 한 쌍을 사고,
나머지 5천원으로는 쌀 한 말을 사며 조금씩조금씩 썼습니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이 때는 흥분으로 인해 각혈을 심하게 했습니다.),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1983년부터 교회 뒤편의 빌뱅이 언덕 밑에
교회 청년들이 지어 준 여덟 평짜리 작은 흙집에서 혼자 살며 글을 썼습니다.


 


비가 오면 넘치는 집 뒤편 작은 냇가는 무척 좋은 빨래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그리고 마음대로 외로울 수 있고, 아플 수 있는 집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닌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면내에 있는 우체국이나 농협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농촌 사람들이 보기에도 무척 가난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빌뱅이 언덕집에서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가 쓴 장편소년소설 ‘몽실 언니’를
MBC에서 36부작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었습니다.
‘몽실언니’는 1981년 울진에 있는 조그만 시골교회 청년회지에 연재한 소설이었습니다.
'몽실언니'는 1990년 9월 1일부터 1991년 1월 5일까지 방영되었습니다.

그는 68세가 되던 2005년 5월 10일 유언장을 미리 썼습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2007년 3월 31일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일을 맡아서 해 줄 이에게 쓴 마지막 글입니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삶을 갈구했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화평의 세상을 염원했습니다.
스스로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며 이런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쓴 90여권의 책에서 들어오는 인세가 연간 1억 원에 달했지만
그는 빌뱅이 언덕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받을 인세 중 얼마는 그가 졸업한 일직초등학교 아이들의 건강한 급식을
위해 사용하도록 했고(일직초등학교에 다니는 제 조카딸도 수혜자입니다),
10억 원의 인세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써달라고 유언했습니다.

2007년 5월 17일 오후 2시 17분 대구 가톨릭대학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뜻을 받들어 2009년 3월 19일 ‘재단법인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인가를 마치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과 앞으로 발생하는 저작권 인세수입은
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을 매개로 어린이들을 만나는데 쓰일 것이고,
물질적인 가난과 고통을 넘어 정신적인 가난과 고통을 극복하는
건강한 어린이로 성장하는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말합니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유언에서 걱정을 잊지 않은 북측과 중동, 아프리카, 티베트 등
분쟁지역 어린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생 칩거하며 집필한 동화 「무명저고리와 어머니」, 「강아지똥」, 「몽실언니」등과
산문집 「우리들의 하나님」,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
수많은 작품 속에는 그의 열망이 담겨있습니다.
“내가 쓰는 동화는 그냥 ‘이야기’라 했으면 싶다. 서러운 사람에겐 남이 들려주는
서러운 이야기를 들으면 한결 위안이 된다. 그것은 조그만 희망으로까지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 환상 속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하며
평생 예수를 믿으며 그의 삶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했지만
그러나 그들이 나를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자신이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적인 삶을 그려냈습니다.


*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는 1994년에 출판사 ‘산하’에서 발행한 장편동화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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