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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1 17:33

1.

요즘 우리 마을 김장용 배추들이 비싼(?) 값에 팔리고 있어서 배추 농사를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포기당 많이 받은 사람은 800원 정도고 대체로 600원 대에서 많이 팔린 것 같습니다. 물론 배추를 산 사람들은 밭떼기 중간상인들이구요. 팔렸다고 해도 배추는 아직 더 키워야 하기 때문에 배추의 출하는 김장철에 맞춰서 시작됩니다.



우리 마을은 배추 마을입니다. 축산도 많이 하지만, 일반 농사로는 단연 배추를 비롯한 채소 농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봄가을로 배추 철이 되면 배추 값에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이런 배추 값은 희망 사항일 때가 많습니다.

배추 농사를 짓는 가구당 대략 6,000포기에서 20,000 포기 사이로 배추 농사를 합니다만, 10,000 포기 이하가 많습니다. 사실 농촌에서 특화된 작물을 빼고 이렇게 수입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도시 소득에 비하면 약하죠. 3~4개월 동안 정말 뼈빠지게 일해서 이렇게 번 것이니까요. 이 속에는 그동안 투자비며 인건비며 기타 비용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되도 농민들의 얼굴에서는 주름이 조금씩 펴집니다. 지난봄엔 추운 날씨 속에서도 열심히 배추 농사를 지었지만 배추를 판매한다는 것 자체부터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결국 상당수의 농가들이 농협 보조금으로 포기당 100원씩 받고 경운기로 밭을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자식처럼 키운 농작물을 눈물을 머금고 갈아엎는 그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얼마나 될까요?

요즘 뉴스마다 배추 값이 급등하고 있다고 연일 긴박감 속에서 보도합니다. 작년 가격 대비 130% 이상 올랐다고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등락이 있겠지만 대체로 올 해 김장철에는 배추가 포기당 3,500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동안 제 경험으로 봐도 밭에서 팔리는 가격의 약 5~6배 정도로 시장 가격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시중에서 예년처럼 배추 한 포기가 500원 정도에 팔린다면 이미 농촌에서는 울면서 배추밭을 갈아엎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오늘 우리 농촌은 울면서 밭을 갈아엎는 일에 너무도 익숙합니다. 그리고 배추 값이 오른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변동사항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그 중에는 수확량 감소도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그러니까 배추 값이 오르는 만큼 그대로 농민들에게는 수입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올 해 같은 가격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아무튼 밭에서는 포기당 600원 정도에 팔리는데도 시장에서는 5,000원까지도 치솟는 현상은 유통 과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배추가 산지에서 출하돼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중간상인의 마진 외에도 운송비, 수확비, 상하차 비용, 경매비, 쓰레기 처리 비용이 붙고 도매상과 소매상도 마진을 남겨 포기당 3~4천원이 더 비싸집니다. 나름대로 다들 할 말이 있겠지만, 유통 과정만 줄인다면 농민이나 소비자나 서로가 즐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유통구조는 그 누구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철옹성이 돼서 안타까운 마음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농민들로서도 이 구조에 편승하지 않으면 전량 혹은 일정량 이상의 판매를 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나이가 많은 분들은 이게 편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서 생산자나 소비자나 고통을 받는 문제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마음을 열어놓고 머리를 맞대면서 논의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고요. 아마 여러분들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2.

소비자 가격이 정해져서 나오는 공산품과는 달리 농산물은 생산자가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독특한(?) 품목입니다. 물론 농산물 자체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원리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 결정권이 없는 이런 난감함은 농사짓는 것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배추를 갈아엎는 가슴 아픈 광경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정말 우리 농민이 배추를 남아돌게 할 정도로 많이 생산해서 이렇게 먹을거리를 갈아엎어야 하는 가입니다. 배추가 팔리지 않는다고 하는 이면에는 여전히 배추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싼 배추라도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쌀과 배추가 제대로 가격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이제 확실한 식량자급 국가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먹고 사는 데는 그리 걱정이 없는 나라라는 착각도 곁들어지고요. 그런데 올해 9월까지 우리나라 곡물 수입액을 보면 지난해보다 39% 늘어 전체 농축산물 수입이 97억 달러가 넘었다는 뉴스 앞에서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량자급률이 20%대에 머물러 있는 우리로서는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식량의 수입물량이 커져나간다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돌아올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는지 모르지만 결국 먹을거리에 대한 주도권을 뺏긴 우리의 삶이 온전해 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배추 문제는 우리의 식생활이 변해 가는데 적응하지 못한 대표적인 채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배추 문제로 전체 식량 문제를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산물 중 과잉생산과 수확량 감소를 해마다 번갈아 가면서 하는 대표적인 작물이기 때문에 쌀과 함께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식량에 대한 접근을 지불 능력에 달려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을 얻고, 돈이 없는 사람은 굶주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방치되면서 식량 생산, 판매, 유통(무역), 식량 소비로 이어지는 시장원리주의가 식량의 가격을 결정하고, 특히 유통과 판매에 있어서 이윤극대화 법칙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제한 이윤추구인 이윤극대화 법칙은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를 조금도 따져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배추 농사를 지어야 이 배추가 정말 건강한 먹을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필요 없는 것으로 돌리고, 오직 시장에서 이윤의 가치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농민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서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시장 원리 자체가 농민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농민도 그렇게 따라갑니다. 이것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든다는 친환경유기농업까지도 경쟁과 상품성에만 매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당수의 친환경농업의 기술 체계가 상업 자본에 완전 종속되어서 친환경농업도 수익적 가치실현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직 시장 기능만이 모든 경제활동과 삶을 밑받침하게 만든다는 이런 구조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늘 불안하고 희망이 없습니다.

먹는 일이 가장 먼저인 우리의 식탁에 친근하게 놓여야 할 배추가 때로는 너무 비싸서 사먹지 못한다거나 혹은 너무 싸서 밭에서 갈아엎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런 불안과 절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의 담론은 화려해서 쉽게 추종자들을 끌어들입니다. 서민이나 그들 편에서 애쓰는 진보적 활동가들이나 나름대로 양식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시장과 경쟁의 논리를 새로운 희망처럼 내세우는 경향도 있습니다.

3.

식량이 먹을거리 자체로서 역할보다도 이윤 증식의 도구로만 사용되다 보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식량위기의 징조는 식품 값 폭등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량학자들에 의하면(1984년 FAO의 평가), 지구는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는데,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꼴입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열악한데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식량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은 세계 식량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적절한 분배를 하려는 노력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와 국제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제는 보편적 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2005년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156개국의 국가 정상과 정부 수뇌가 모였습니다. 북한 대표도 참석했고요. 이 회의에서 ‘밀레니엄 목표’가 정해졌는데, ‘기아와의 전쟁’이 에이즈와의 전쟁이나 무장 해제, 오존층 보호보다 더 우선시되는 제일의 목표로 선포되었습니다. 기아 사망자 수를 2015년까지 최소한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입니다. 이것은 분명하고 좋은 목표였지만 그러나 최근의 통계들은 지금의 경제 질서에서는 이런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이런 일들의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배추 문제도 폭을 넓혀서 바라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적인 역학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압박당하고 해체를 요구 받고 있는 우리 농촌이 지금 특수 작목 외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것은 배추를 비롯한 김장류 채소들뿐입니다. 아직까지는 장거리 유통의 문제도 있고, 가격적으로도 견딜만하기 때문입니다. 가격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것은 아무리 우리 몸에 좋고 먹고 싶은 것이라고 해도 심을 이유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아니 냉혹한 시장 원리에 의해서 빼앗겨 버렸다고 해야겠습니다. 다양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만만한 것이 배추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중국산 때문에 얼마나 갈 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 중국산 김치의 기생충 파동 사건을 보면 우리나라 배추나 김치가 얼마나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FTA를 비롯해서 국제적 이해관계가 더욱 치열해질수록 농산물 가격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농민들은 그나마 지은 작물들의 과잉생산과 수확량 감소 사이에서 허덕일 것입니다.

4.

가격이 괜찮다고 해도 배추를 밭떼기로 중간상인들에게 넘기는 농민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다음 배추 농사에도 이렇게 값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음 배추 농사에도 이렇게 값을 받으면 소비자들은 또 얼마나 힘들까요? 생각하면 서로가 안타깝습니다. 소비자를 고려해서 농사를 지으면 농민이 울고, 농민들이 웃으면서 농사를 지으면 소비자가 우는 이런 이상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물론 직거래를 비롯해서 유통의 개선 등 여러 가지 대책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한시적인 방법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방법들이라도 지금은 실천에 옮겨야겠고, 바란다면 먹을 것을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들도 농업의 현실과 식량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누구 말마따나 쌀이 없으면 빵을 먹고, 빵이 없으면 라면을 끓여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 권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제대로 밥을 먹고 김치도 먹어야 한다면 우리의 건강한 생존을 위한 좋은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여러 사람들의 인식과 지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인식과 지각의 변화가 모이고 모인다면 비록 작은 힘이라고 할지라도 또 다른 분배를 위해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중요한 전환점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망은 어디에서 생겨날까요? 희망은 이런 상태를 오래 참지 못하는 변화하는 의식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가 희망이 됩니다. 변화된 의식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5.

배추가 거의 밭떼기로 중간상인들에게 팔렸지만, 직거래와 소매를 위해서 남겨 둔 배추밭이 있습니다. 사실 배추를 밭떼기로 넘기기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좀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왜냐하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연농법인 미생물농법(EM농법)으로 지은 배추들이기 때문입니다. 중간상인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그 더운 날 미생물퇴비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고 배추 한 포기 한 포기 마다 온갖 정성을 쏟았는데, 이름표가 달린 것도 아니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도 위안을 받는 것은 누군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 배추를 먹는 이도 이것이 어떤 배추인줄은 모르겠지만, 그의 입을 통해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 건강한 뼈가 되고 살이 될 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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